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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조 규모 신규사업 차기정부로 부담 떠넘겨

입력 | 2013-07-06 03:00:00

■ 지방공약 이행계획 ‘빈껍데기’




기획재정부가 5일 내놓은 지역공약 이행계획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처럼 모호해서 공약을 언제 어떻게 추진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약의 60%를 차지하는 신규사업 대부분이 차기 정부에 가서야 ‘첫 삽’을 뜰 수 있는 데다 사업규모가 대폭 축소될 수 있는 만큼 사업 추진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 철도사업 착수에 5년 이상 소요

이행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106개 지역공약을 167개 세부사업을 통해 실천할 예정이다. 세부사업은 다시 71개의 계속사업과 96개의 신규사업으로 나뉜다. 이미 타당성조사와 설계가 끝난 계속사업의 경우 하반기부터 순차적으로 공사가 시작된다. 포항∼영덕 고속도로 건설, 진주∼광양 복선전철 신설, 새만금 내부개발 등이 계속사업이다.

총 사업비는 124조 원으로 계속사업에 40조 원이 들고 신규사업에 84조 원이 들어간다. 계속사업에 드는 국비는 박근혜정부 임기 동안은 14조 원 정도에 그친다. 차기 정부가 시작되는 2018년 이후에는 자금 소요액이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기재부는 이 자금을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분야에서 충당하기로 했다. 특히 민간 분야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연말부터 민간투자의 한 형태인 BTL(민간이 시설을 짓고 정부가 빌려 쓰는 방식)사업을 민간이 먼저 제안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지금은 정부가 BTL사업을 지정하고 입찰공고를 내야 민간회사가 들어올 수 있다.

그나마 계속사업은 이미 나와 있는 일정대로 진행하면 되지만 문제는 신규사업. 신규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 기본계획 수립, 기본설계, 실시설계 등 복잡한 절차를 모두 거쳐야 한다. 사업 규모별로 각 절차를 진행하는 시간이 다르지만 철도사업처럼 큰 규모라면 착공까지 통상 5년 이상 걸린다. 이번 정부 내에 기공식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역공약의 부담을 다음 정부로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방문규 기재부 예산실장은 “다음 정부에도 필요한 사업인 만큼 국가가 존속하는 한 사업이 이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신규사업 가운데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쳤거나 총 사업비가 500억 원 미만이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할 필요가 없는 공약사업부터 먼저 추진하기로 했다. 사업 진척이 빨라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 쉽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의 선호도가 높고 각 지방에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사업도 가려내 속도를 낼 예정이다.

○ “지역 간, 정권 간 갈등 유발 소지”

기재부는 신규사업과 관련해 총 사업비(84조 원) 규모만 밝혔을 뿐 중앙정부, 공공기관, 민간기업이 분담할 비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복지 관련 사업에 돈을 많이 써 이미 적자를 보고 있는 지자체로서는 지역공약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내심 중앙정부와 민간이 재원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 주기를 바라고 있다.

전남도는 여수엑스포장 사후 활용,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관련 산업 활성화 등에 정부 지원을 기대한다. 정승준 전남도 정책기획관은 “정부가 여수엑스포장에 투입한 3846억 원을 회수하려고 하는데, 이 자금을 해양관광특구 조성에 사용하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부산시는 이날 지역공약 이행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사업별 진행상황을 분석해 분야별로 정부와 협상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정밀하게 검증하지 않은 지역공약을 남발하고 이를 강행하면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번 대책은 지역 갈등뿐 아니라 정권 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다음 정권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지역공약을 실천하는 방식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라 곳간의 형편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사업성이 떨어지는 공약은 실천하기 힘들다는 점을 설명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마지막까지 사업을 ‘하는 척’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게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홍수용·박재명 기자 legman@donga.com·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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