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빛난다/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지음·김동규 옮김/423쪽·1만6000원/사월의책
엄밀하게 말하면 철학서도 아니다. 두 명의 필자는 미국 대륙의 서쪽과 동쪽을 대표하는 철학교수다. 드레이퍼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미국 최고의 하이데거 실존철학가로 꼽힌다. 켈리 하버드대 교수는 프랑스와 독일 현상학의 대가다. 하이데거는 현상학과 실존철학 양 분야의 태두다. 이 책은 그런 하이데거 철학의 미국적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책에는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하이데거의 철학개념은 없다. 하이데거의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 단테의 ‘신곡’, 허먼 멜빌의 ‘모비 딕’ 같은 문학작품에 대한 분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아직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요절한 천재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와 오프라 윈프리 쇼가 사랑한 ‘칙릿’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 같은 현대작가도 등장한다.
이렇게 반짝이는 진주알들을 하나로 꿰는 실은 ‘경이’다. 저자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는 허무와 우울의 근원을 구체적 삶 속에서 발견하는 경탄과 기쁨의 상실에서 찾는다. 이런 상실이 왜 초래됐는가. 진리와 의미의 원천을 ‘유일신’이나 ‘자율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내재적이고 영원불멸의 요소에서 찾으려는 자폐적 시도 때문이다.
삶의 진정한 의미나 가치는 우리 내면의 확고부동한 신념으로 꿰찰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외부에서 바람처럼 휙 스쳐 가는 퓌시스(생기)를 포이에시스(숙련된 기예)를 통해 포착하고 고양할 수 있을 때 발생한다.
모든 것은 늘 빛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빛을 발한다. 경이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할 때 발생한다. 우리가 이 지루하고 비루한 삶을 살아야 하는 진짜 이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