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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식당 착한 이야기]“콩 잘 삶는게 최고의 기술…내 눈-코-입이 타이머”

입력 | 2013-07-06 03:00:00

경기 분당 콩국숫집 ‘사계진미’




콩국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고소한 콩물을 내는 것이다. ‘사계진미’의 최옥순(왼쪽) 이호규 씨 부부는 국산 콩을 적당하게 삶아 성능 좋은 믹서로 갈아내는데, 콩을 알맞게 삶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성남=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는 계절마다 ‘궁합’이 맞는 제철 음식이 있다. 여름철 대표적인 계절 음식 중 하나가 콩국수다. 냉면이야 원래 겨울철 별미로 출발했지만 콩국수는 여름 한철뿐이다. 그런데 이 콩국수를 사계절 내내 파는 집이 있다.

지난해 8월 3일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식당 15호점으로 선정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사계진미(四季珍味)’. 지난달 27일 오후 4시쯤 132m²(약 40평) 남짓한 식당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10여 명이 앉아 콩국수를 먹고 있었다. 오후 3시 30분부터 5시까지는 휴점 시간이지만 제대로 지키기 어렵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손님들이 찾아와 대기표를 받았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 시간, 그리고 휴일에는 1시간가량 기다려야 콩국수 맛을 볼 수 있다.

주인 이호규(54) 최옥순 씨(47) 부부는 “올여름 초까지는 쉬는 시간이 없었는데 요즘은 너무 힘들어 손님들께 죄송하지만 오후에는 잠깐 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방송 전 하루 270그릇 정도 팔리던 콩국수가 지금은 650그릇이 나간다. 청국장과 육개장도 있는데 70%가 콩국수 손님인 점을 감안하면 얼추 하루 900명이 넘는 손님이 사계진미를 찾는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0시에 문을 닫을 때까지 눈코 뜰 새가 없고, 5월부터 8월까지는 휴일도 없다.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할 수 없어 지난달 25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231m²(약 70평)짜리 가게를 임차해 사계진미 2호점을 냈다. 야탑점은 주방이 작아 콩을 삶는 솥단지 2개를 올려놓으면 그만이다. 한 솥에 5되(3.5kg)가 들어가니 한 번에 7kg을 삶는데 이 식당에서 하루 삶는 콩의 양이 80kg 1가마다. 솥단지 2개로 하루 종일 콩을 삶아야 하는 셈이다. “기다리는 손님들이 불편한 것도 문제지만, 주방을 넓히기 위해 2호점을 마련했어요. 지금은 콩 삶고 콩물 내는 일은 석촌점에서 하고, 수시로 야탑점으로 실어 나르죠.”(이 씨)

콩물은 쉽게 변하기 때문에 냉장차량도 마련했다. 어엿한 직장생활을 하던 남동생 내외와 여동생 내외가 합류하고, 종업원도 2명에서 5명으로 늘렸다.

‘사계진미’의 성공은 부부가 16년간 한 우물을 판 결과다. 서울의 4년제 대학 농대를 졸업한 이 씨는 중견기업 영업사원과 전문지 기자 생활을 했다. 하지만 학사장교 출신으로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성격인 이 씨에겐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비리를 지적하는 일이 영 맞지 않았다. 부인 최 씨와 상의한 끝에 1997년 제2의 고향인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에 작은 설렁탕집을 차렸다.

여름철이 되면서 부부는 시원한 면 종류를 팔 궁리를 했다. 냉면은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고 면 종류와 조리법, 육수 내는 법이 천차만별이라 조그만 가게에는 맞지 않았다. 고심하던 중 친구를 따라 갔던 콩국수 집이 떠올랐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있는 진주회관이다. 서울에서 손꼽히는 콩국수 전문점이다. “진주회관이 유명한 집인 줄 몰랐어요. 친구가 점심으로 콩국수를 산다기에 ‘콩국수가 요기가 되나’ 생각하며 따라갔죠. 그런데 그 고소하고 시원한, 차진 면발의 맛에 놀랐어요.”

이 씨는 진주회관 콩국수 맛을 흉내 내어 보기로 했다. 콩물에다 면을 넣고 소금으로 간만 하면 콩국수가 되는 줄 알았다. 국산 콩을 사서 물에 불려 콩물을 만들고 면발도 직접 반죽해 뽑았다. 그런데 맛이 안 났다. 비리기도 하고, 콩이 너무 익어 메주 냄새가 날 때도 있었다. 국물 맛을 좋게 한다고 잣, 땅콩, 참깨 등 이것저것 안 넣어 본 것이 없었다. 콩 껍질을 벗겨야 식감과 맛이 좋다고 해서 일일이 콩 껍질을 까보기도 했다.

수십 차례 시행착오 끝에 국물 하나만은 자신할 수 있게 됐다. ‘진국일세’라는 상호 등록까지 했다. 손님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지만 가게가 조그만 데다 국산 콩을 쓰다 보니 수지가 맞지 않았다. 부인 최 씨도 안 하던 식당일을 하면서 건강이 나빠졌다. 고생 끝에 자리를 잡아가던 콩국수 가게는 2001년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이 씨는 친구가 운영하는 대형 갈빗집의 영업 관리도 하고, 분당 고깃집의 지배인 노릇도 했다. 분당에서 보리밥집을, 서울 수서역 지하상가에서 보리밥과 청국장 장사도 해봤다. 이때도 콩국수 메뉴는 빼놓지 않았다. 부인은 빠듯한 살림을 돕기 위해 파출부 생활을 했다. 그러다 부부는 결국 다시 음식점을 내기로 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제 적성에 맞는 일은 음식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갖은 고생 끝에 만들어낸 콩물에 대한 자부심과 미련도 진하게 남아 있었습니다.”(이 씨)


2008년 11월 지금의 야탑점에 자리를 잡고 콩국수와 청국장 순두부를 팔았다. 좋은 음식을 일 년 내내 대접하겠다는 부부의 다짐을 담아 상호를 사계진미로 정했다.

사계진미 콩국수 맛의 기본은 주재료인 국산 콩에서 나온다. 중국산 콩은 국산의 2분의 1, 미국산은 7∼8분의 1 가격이지만 가마당 52만 원 하는 국산 콩만 고집한다. 우리 땅에서 자라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데다 농약이나 방부제 걱정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이 씨의 고향인 경북 상주와 후배가 양곡상을 하는 충북 충주 등지에서 구입한다.

콩을 삶는 것도 중요하다. 이 씨는 매일 오후 9시면 물에 담근 콩을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둔다. 오전 5시에 기상해 늦어도 5시 50분이면 가게에 나온다. 콩은 삶으면서 수시로 맛을 봐야 한다. 산지와 콩의 수분상태에 따라 익는 속도가 최대 40분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에 타이머를 맞춰 놓고 삶을 수가 없다. 덜 삶으면 비리고, 너무 삶으면 무르고 뜬내가 난다. 이 씨는 “콩국수 만드는 데는 콩을 알맞게 삶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자 모든 것”이라며 “구수한 냄새가 나면서 비린 맛이 없고 고소하면 잘 익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비결은 껍질째 삶는 것이다. 그래야 콩의 영양분과 고소함을 잃지 않는다. 삶은 콩을 찬물에 식히고 믹서가 고장 나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물을 넣어 갈아주면 콩물 내기는 끝난다. 사계진미의 콩 국물은 카푸치노나 고급 맥주의 거품처럼 부드럽다. 밀폐용기에 나눠 냉장 보관해 두었다 그때그때 꺼내 쓴다.

콩국수에선 면도 중요하다. 부부는 직접 만들어 봤지만 만족스럽지 않아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서울 중곡동 국수공장에 주문해서 쓴다. 중면을 쓰는데 천연 치자로 색을 내 노랗고 수타면보다는 덜 질긴 중간 정도의 쫄깃함에 부드러운 맛이 난다. 생면이 아니고 건면인데 6분 안팎을 삶아야 제 맛이 난다. 그릇에 국수를 담고 미리 소금 간을 한 콩물을 담아 내놓으면 사계진미의 콩국수가 완성된다. 오이는 향이 강하기 때문에 콩국수 본연의 맛을 해칠 우려가 있어 오이 고명을 얹지 않는다.

청국장과 육개장, 밑반찬도 부부가 직접 장을 봐 온 국내산 재료로 만든다. 작두콩 청국장은 충북 진천의 작목반에서 특허까지 받은 제품이다. 다른 청국장에 비해 특유의 냄새는 적지만 맛을 보면 구수하다. 육개장은 맵지 않고 기름기가 적어 담백한 맛이다.

이 씨는 항상 잠이 부족하다. 늦게 친구라도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는 날이면 3, 4시간 자고 가게에 나와야 한다. 지난 1년 사이 몸무게가 5kg가량 줄었다.

성남시 구시가지 21평짜리 단독주택에서 노모를 모시고 사는 부부의 꿈은 뭘까. 돌아온 답은 그럴듯한 집을 장만하는 것도, 고급 차를 모는 것도 아니었다.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콩 농장을 만들고 밭 한가운데 정자를 지어 거기서 콩국수를 파는 게 꿈이라고 했다.

“지금처럼만 손님들이 사랑해 주시면 빠르면 5년 안에는 그 꿈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초심을 잃지 않고 정직한 먹거리를 만들어 보답하렵니다.”

성남=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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