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신발은 익숙한 신발”…고객만족 철학을 바꾸다
‘아픈 신발’을 고쳐주는 신발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민용 사장. 새롭게 태어날 신발들을 앞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고어텍스 코리아에서 이사로 잘나가다 2008년 사표를 내고 ‘신발 병원’ 슈클리닉을 차린 이민용 사장(54). 찾아온 고난을 이겨 낸 독수리와는 달리 인생 최고의 정점에서 내린 결정이지만 뭔가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삶 자체가 무의미하게 끝날 것 같았다. 10년 동안 1년의 3분의 1 이상을 해외 출장으로 보내며 회사 규모를 25배가량 성장시켰다. 업계에선 늘 ‘최고’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진정한 내 인생’이 아닌 것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맘을 먹었다.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그런데 왜 하필 신발 병원이었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제화업계에서 일한 뒤 아웃도어 업체에 원단을 공급하면서 항상 ‘혼자 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시장 분석을 하고 있었다. 자본 투자가 적고 남들이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최우선 사업 아이템이었다. 그러던 중 고객들이 수십만 원짜리 고가 등산화를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것을 지켜봤다. 창이 닳아 더 신을 수 없는 상태였는데 수년 동안 함께한 신발이라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신발 판매 업체가 수선해 주지만 조금 신다 보면 역시나 못 신을 상태가 됐다. 밑창 위쪽 가죽이나 천은 그대로인데…. 이거다 싶었다.
사표를 낸 뒤 부산으로 향했다. 한국이 수출산업에 집중하던 1970, 80년대 신발 장인들은 부산에 모여 있었다. 지금은 노동 집약형 산업이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나가는 바람에 수선공으로 전락했지만 한때 공장장까지 했던 ‘장인’들이 부산에 많이 살고 있었다. “아니 멀쩡한 직업 놔두고 왜 이런 힘든 일을 하려고 해”라는 반응이었지만 이 사장은 나이 지긋한 수선공들을 쫓아다니며 신발을 제대로 고치는 기술을 1년간 배웠다.
2009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신발 병원을 개업했다. 생각은 좋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신발 병원이라고 내세웠지만 그저 신발 수선 가게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처음엔 일할 사람도 구하지 못해 아내와 함께 신발을 고쳤다.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서 일하던 때완 완전히 다른 삶이었다. 한마디로 막노동이었다. 고장 난 신발이 오면 상태를 점검하고 밑창을 떼어 낸다. 가죽과 천의 상태가 좋으면 바로 신발 크기에 맞는 발 모형을 삽입하고 맞는 밑창을 찾아 꼭 맞게 붙여 주는 작업을 한다. 모두 수작업이고 밑창을 결합할 때만 강하게 압박하는 기계를 사용한다. 일을 시작하고 74kg이던 몸무게가 64kg까지 줄었다.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했다. 하지만 애지중지하던 신발이 새롭게 태어난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고객의 모습에서 즐거움을 찾았다. 신발 병원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고객도 늘고 있다.
한 고객에 대한 일화다. 등산을 수십 년째 즐기면서 10여 개의 등산화를 신다가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있었단다. 왜 신지도 못하는 신발을 쌓아 두느냐는 아내의 원성에 다 버리고 가장 아끼는 것 하나 남았을 때 슈클리닉 소문을 들었단다. 그 애장 신발이 새롭게 태어난 것을 보고 “왜 이런 신발 병원이 있는 줄 몰랐는지 정말 아쉽다. 그럼 버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며 하소연을 했단다.
이젠 하루에 250∼300켤레의 ‘아픈’ 신발이 병원에 쇄도한다. 아직은 대부분 아웃도어 업체에서 고칠 신발을 보내 주는 것이다. 약 10%가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고객. 신발을 고치는 데 5∼10일 걸린다. 이 사장은 신발 고치는 일을 ‘외과수술’에 비유한다. 병원에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듯 신발도 수술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만든다는 의미에서다. 이젠 신발 병원 식구도 늘어 창 분리, 세척, 미싱 및 바느질, 창 부착 및 압박 등을 10명이 분담해 하고 있다. 사장이라고 지시만 하진 않는다. 앞치마를 입고 직원들과 똑같이 일한다. 바쁠 땐 아내까지 불러 함께 일한다.
이 사장은 아들 해진 씨(25)에게도 신발 분야에서 일하도록 유도했다. 고교시절 진로를 정하지 못하는 아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신발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했다. ‘사람이 신발 없인 절대 살 수 없다. 일은 좀 힘들지만 전망은 밝다’는 게 요지. 30년간 제화 및 아웃도어 업계에서 일한 아버지를 지켜봐 와서인지 선뜻 국내 유일의 신발지식공학과(부산 동서대)를 택해 공부했다. 현재 군복무 중인 해진 씨는 아직 아버지와 함께 신발 병원에서 일할지, 제화업계에서 일할지 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아버지의 업을 잇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사장은 신발 병원을 열고 두 가지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먼저 버려질 신발을 자신의 인생처럼 ‘다시 태어나게 해’ 고객들이 새롭게 신을 수 있는 것을 보며 이렇게도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 고쳐서 신을 수 있는 신발이 1년에 수십만 켤레다. 경제적 손실이 그만큼 크다. 또 하나는 단순하게 신발 고치는 업이지만 자원의 재활용을 통해 환경을 보호하는 공익사업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철학도 바뀌었다. “신발을 고쳐 주다 보니 잘나갈 때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사람은 어느 순간 자만하게 되거든요. 아래는 잘 안 보입니다. 그런데 땀 흘려 일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고 이렇게 땀 흘려 일하다 보니 겸손해집니다. 힘들게 버는 돈이라 더 소중하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찮은 일처럼 보이지만 이 작은 일을 통해 서로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을 하면서 도전 의식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사장은 장기적으로 신발 병원을 브랜드화할 계획이다. 아픈 신발을 새롭게 고쳐 신을 수 있는 병원을 전국에 만드는 게 목표다. 현재는 비용을 감안해야 하는 현실 탓에 고가의 등산화를 고쳐 주는 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조깅화 축구화 등 스포츠 브랜드도 취급할 계획이다. 지금도 부탁이 오면 축구화 등도 고쳐 주는데 아직 수요가 많지는 않다. 등산화 하나 고치는 데 4만∼6만 원이 든다. 이 돈을 투자하면 새 신발 못지않게 된다. 상담은 홈페이지(www.shoeclinic.co.kr)나 070-4118-1163으로 하면 된다.
“사람도 아프면 병원에 가듯 신발도 아프면 병원에 보내세요. 그래야 그 신발을 신는 사람도 아프지 않습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