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단한 노력으로 ‘은퇴’이후 대비하라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쓴 ‘변신’ 첫 부분에 나오는 이 문장은 충격적이고 기괴하다. 여러 경우에 적용될 수 있지만 이 이야기는 은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이를 둘러싼 가족의 변화 모습에 대입해보면 섬뜩하게 비슷한 점이 많다.
영업사원인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부모님과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갑충으로 변해버리고 가족을 먹여살릴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다. 경제적 능력이라는 것이 사라져 버린 뒤의 가장의 모습은 갑충과 다름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하며 그레고르를 불쌍해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비롯해 주인공이 예뻐하던 여동생도 시간이 지나면서 돌아서 버리고 그레고르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나마 어머니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이 카프카가 생각한 인간에 대한 최후의 보루였는지 모른다.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꽂혀서 결국 죽게 된다. 가족들은 그 죽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에 대해 카프카는 ‘약간 운 듯했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며 새로운 희망을 가진다. ‘목적지에 이르자 딸이 제일 먼저 일어나 젊은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켰을 때, 그들에게는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의 보증처럼 여겨졌다.’
카프카는 인간과 가족에 대해 ‘갑충’이라는 대용물을 내세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레고르가 ‘변신’을 했다면 가족들은 ‘변심’을 한 것이다.
우리 역시 은퇴와 더불어 ‘변신’을 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레고르의 갑충에 머무르지 않고 또 한번 변신을 해야 한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개구리 왕자처럼 예쁜 공주님이 입맞춤을 해서 ‘짠’ 하고 변할 날을 기다리는 것과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곰에서 인간으로 변신한 웅녀처럼 각고의 노력을 통해서 변하는 것이다. 답은 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