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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이현 “1990년대 아파트키즈 감성 그렸죠”

입력 | 2013-07-08 03:00:00

신작소설 ‘안녕, 내 모든 것’ 펴낸 정이현




소설가 정이현은 1990년대를 건너온 ‘아파트키즈’의 이야기를 장편소설 ‘안녕, 내 모든 것’ 에 담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세련된 도시적 감성을 담은 문장으로 2030세대 독자를 몰고 다니는 문단의 핫 아이콘 정이현이 신작 ‘안녕, 내 모든 것’(창비)을 냈다. 지난해 봄부터 계간 ‘창작과 비평’에 1년간 연재한 글을 엮은 장편이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조부모 집에 떠맡겨진 세미,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수시로 욕이 튀어나오는 ‘투렛증후군’을 앓는 준모,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처럼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지혜, 이 세 단짝 친구의 성장 스토리다.

신작은 김일성이 죽고(1994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1995년) 1990년대 초중반이 배경이다. 그는 문단이 그리 주목하지 않는 이 시기를 작품 속에 즐겨 소환한다. “(1972년생인) 저라는 사람의 8할 정도는 90년대가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90년대 얘기는 곧 제 얘기가 되는 셈이죠. 또 90년대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개인’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잖아요? 인물이나 갈등이 2013년의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죠. 외환위기(1997년)를 기점으로 갑자기 단절되면서 이제 주목하는 이들이 없는 시대지만요.”

그의 소설에 붙어 있는 또 하나의 꼬리표는 ‘강남 소설’이라는 것. ‘달콤한 나의 도시’와 ‘삼풍백화점’을 통해 정이현은 ‘강남 여성의 심리를 읽어 내는 데 탁월한 소설가’란 평가를 받았다. 신작의 세 주인공도 서울 반포의 고교 동창들이다. “또 한 편의 강남 소설로 읽어주시길 바라진 않아요. 강남의 유복한 집 자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주인공들을 묶어 주는 건 강남이라는 지리적 공간보다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키즈’로서의 감성이죠.”

과연 소설 속에 그려진 주인공들은 ‘강남 키즈’의 전형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또래 세대에 허락된 풍요를 맘껏 누리면서도 기성세대의 속물근성과 물신숭배에는 거침없는 냉소를 날린다. “제도권의 기준에선 살짝 비켜 있는 인물이죠. ‘사고뭉치’는 아니어도 ‘아웃사이더’라고 할까? 그 덕분에 부모나 조부모 세대의 가치관과 기준을 상대화해 볼 수도 있는 눈을 가지고 있죠.”

소설 후반부에서 주인공들은 세미의 할머니에게 닥치는 비극으로 인해 평생 비밀로 간직할 ‘구덩이’를 파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치명적이고 개인적인 치부를 묻어 놓은 구덩이를 마음속에 갖고 살아가잖아요. 구덩이는 기성세대의 가치와 세 친구의 결별을 보여 주는 상징이에요.”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안녕, 내 모든 것’이란 제목에 담긴 뜻을 알 듯도 하다. 작가의 8할을 만든 1990년대에 대한 애정(‘내 모든 것’)이자, 아무도 증언하지 않는 그 시대를 향한 호명(呼名)인 동시에 작별(‘안녕’)의 의미는 아니었을까?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