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이사를 간다. 스무 살 때 고향을 떠나오면서부터 길 위의 삶은 시작됐다. 내 집을 갖기 전까지는 이런 이별을 반복할 것 같다. 길든 짧든 내가 잠을 자고 숨을 쉬고 밥을 먹었던 장소들에는 왠지 아직도 그때의 내가 남아 살고 있을 것 같다.
처음 혼자 살기 시작한 스무 살 때는 너무 외로웠다. 그때 모틀리 크루의 ‘홈 스위트 홈’ 같은 노래를 많이 들었다. 본가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듣다 멍청이처럼 눈물짓기도 했다. 모틀리 크루처럼 불량기 넘치는 외모에 금속성의 요란한 음악을 쏟아내던 성공한 록 밴드들은 향수병에 대한 아름다운 곡을 많이 썼다. 성공을 거두면 북미나 세계 순회공연을 떠나야 했고, 그러면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와 헤어져 1년의 대부분을 만리타향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화려하며 요란스러운 삶의 무대를 내려오면 그들은 울적해졌다. 그러면 기타를 들거나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아무런 말도 표정도 없다. 내가 이 작은 방을 떠나도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정확히 계량된 1분만큼의 먼지를 1분마다 실내 이곳저곳에 얹으며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할 것이다. 며칠 후면 떠나버릴 나도 어쩌면 그들처럼 사람들 눈에 안 보이게 여기서 계속 살아갈지 모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을 자고 숨을 쉬고 밥을 먹으면서. 이곳에서. 영원한 고향으로 떠날 때까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