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기 美서 착륙사고]전문가들 사고 원인 놓고 분분 기체결함? “사고기 한달전 엔진오일 새” vs “이번엔 고장메시지 없어” 조종실수? “기장 1만시간 비행 베테랑” vs “사고기 기종 40시간 몰아” 공항문제? 관제탑, 비상시 착륙돕는 유도장치 고장난 활주로로 안내
“착륙 몇 분 전 비행기가 이상하게 기우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비행기 꼬리가 땅에 부닥쳤고 동체가 앞쪽으로 튀어 올랐다. 그때 다시 땅에 부딪치며 쿵 소리가 났다.”
7일 사고가 난 인천발 미국 샌프란시스코행 아시아나항공 214편에 탑승했던 이장형 씨(32)는 미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씨의 증언은 착륙 전 기체 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내외 항공 전문가들은 “명확한 사고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섣부른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고 직후 CNN 등 일부 외신은 항공기 자체에서 일부 이상이 생겨 조종사가 관제탑을 긴급 호출하고 응급차량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와 아시아나항공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비행 중 특이 사항이나 고장 메시지를 보낸 것이 없었다”며 “구급차량을 요청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기체 이상이 발생하면 곧바로 본사 통제센터에 관련 메시지가 자동 전달된다. 그런데 이날은 전혀 그런 메시지가 도착하지 않았다. 사고기 기장도 착륙 직전 정상적인 안내 방송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NYT) 인터넷판도 익명을 요구한 미 항공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사고 여객기가 비상 착륙을 시도한 것은 아니며 충돌 직전까지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고 전했다.
2006년 3월부터 운항한 이번 사고기는 미국 보잉사의 ‘B777-200ER’ 기종이다. 엔진은 프랫앤드휘트니(PW)사가 만든 것이다. B777은 항공업계에서 비교적 안전한 기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제너럴일렉트릭(GE)사의 엔진을 쓴 ‘B777-300ER’는 올 들어 한국, 중국, 러시아 등에서 잇달아 엔진 기어박스 불량 사고를 내기도 했다.
○ 조종사의 실수일까?
국토부는 이런 증언들을 토대로 항공기가 착륙하다 동체 후미가 활주로에 충돌해 활주로 왼쪽으로 이탈하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했다. 항공기는 고개를 들고 이륙하지만 착륙할 때도 고개를 든 채 꼬리 부분부터 먼저 내린다. 그런데 탑승자들은 꼬리가 내려간 각도가 정상보다 훨씬 컸다고 증언했다.
신상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이런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것이 꼬리날개 자체의 문제였는지 조종사의 실수였는지 추후 확인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사고기가 착륙할 때 기장 역할은 이강국 기장(45), 부기장은 이정민 기장(49)이 맡고 있었다. 이들은 비행 경력이 1만 시간 안팎에 이르는 베테랑이지만 이강국 기장이 B777기를 몰아본 경험은 40여 시간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현지 공항 문제로 인한 사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사고기가 착륙한 샌프란시스코 공항 28L 활주로의 계기착륙장치(ILS)가 고장 났다는 공지가 약 한 달 전부터 공개돼 있었다는 주장이다. ILS는 기상 악화 등으로 활주로에 접근이 어려울 때 자동으로 착륙을 도와주는 장치다.
이우종 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항행위원은 “항공고시보에 보면 해당 활주로는 6월 1일부터 7월 22일까지 ILS가 고장 중이라고 돼 있다”며 “관제탑이 왜 이 활주로로 안내했는지, 조종사가 고장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버러 허스먼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위원장은 “조종사 실수를 비롯해 기체 결함 등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최정호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통상 사고 조사 기간은 6개월에서 늦으면 2년가량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창덕·박희창·장관석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