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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기성용의 SNS 비밀 계정

입력 | 2013-07-08 03:00:00


며칠 전 배우 한혜진과 화려한 결혼식을 올린 기성용 선수(24)에게는 행복을 곱씹고 있을 때에 찾아온 시련이다. 4일 한 축구 칼럼니스트가 기 선수의 페이스북 비밀 계정에서 최강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을 겨냥한 “우리(해외파)를 건들지 말았어야 됐고…그러다 다친다”는 글을 발견해 공개하면서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기 선수는 다음 날 최 감독에게 공식 사과했고, 대한축구협회도 “징계 사유는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비밀 계정’이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와 20대 젊은이답지 않은 ‘글투’가 그를 다시 보게 만든 건 사실이다.

▷온라인에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팀을 장악하지 못한 감독이 문제다” “사적 글을 공개한 사람이 잘못 아니냐”는 의견도 있고, “기성용 확 깬다” “해외파 선수들의 특권의식과 파벌의식이 실망스럽다”며 기 선수를 탓하는 글도 있다. 이번 사태를 축구계의 갑을 관계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갑 행세를 하는 몸값 높은 해외파 선수가 학맥도 해외 경력도 없는 감독을 을로 보고 무시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항명 사태는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다. 기성용은 한국의 10번째 프리미어리거. 해외 리그에서 자유로운 조직 문화를 접한 해외파들은 한국의 수직적 사제(師弟) 문화가 못마땅할 수 있다. 글로벌과 로컬 스탠더드의 충돌인 셈이다. 예전 같으면 술자리에서 내뱉고 흘려버렸을 감독의 뒷담화를 요즘 선수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뒤 사적(私的) 글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알게 된 이상 기분 나쁜 건 어쩔 수 없다. 디지털 세대와 아날로그 세대의 충돌이다.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은 이런 충돌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듯하다. 그는 팀워크에 방해되는 선수라도 꼭 필요하면 비위를 맞출 수 있다고 했다. 또 대표팀 소집 기간에는 SNS 사용을 제한하겠다고 하면서도 젊은 선수들에게 SNS를 완전히 끊으라고 할 순 없다는 유연함도 보였다. 감독 하기도 힘든 세상이 된 것 같다. 협회와 홍 감독이 이번 SNS 파문에 어떤 후속 대책을 내놓든 그것은 한국 축구의 새로운 수비 포맷이 될 것이다. 세계화와 SNS의 드리블에 맞선.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