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질문 사라진 자리에 막장과 신파라는 센 양념이
일본 원작 ‘여왕의 교실’의 주인공 마야 선생(아마미 유키·왼쪽)과 한국판의 마여진 선생(고현정). 화사한 피부를 뽐내는 고현정과 달리 아마미 유키는 내내 칙칙한 얼굴로 등장한다. 유튜브 동영상 캡처·MBC TV 화면 촬영
먼저 주인공 마여진 선생으로 나오는 고현정과 일본 원작에서 아쿠쓰 마야 선생을 연기하는 아마미 유키의 연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잿빛 얼굴에 쪽 찐 머리의 마야 선생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아이들에게 ‘사이보그’라고 불린다. 하지만 마 선생은 표정이나 대사 톤이 훨씬 다양해 짜증이나 화 같은 감정이 대사에 묻어나버린다. 게다가 스타일도 좋아서, 하이힐을 신고 수업도 한다!
마 선생과 마야 선생이 아이들을 혼낼 때 사용하는 ‘결정적 대사’도 다르다. 마야 선생은 “이제 그만 눈을 뜨지 그래?”, 마 선생은 “찌질대지 마”라고 한다. 아이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청유형 문장을 사용하는 마야 선생과 아이들을 ‘찌질이’로 규정하며 명령조의 문장을 구사하는 마 선생. 대사 한 줄이지만 두 드라마가 ‘어린이’를 어떻게 다루는지 선명히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원작은 마야 선생의 입을 빌려 “아이를 아이답게 보호하기만 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어차피 약육강식, 무한경쟁의 현대사회에서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학교에서부터 그런 룰을 적용해 아이들이 강해지도록 교육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아이와 학부모, 교사 모두 아이들이 어리광 그만 부리고 최소한 자기 행동에 어떤 대가가 따르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알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판 ‘여왕의 교실’은 이런 질문 대신 왕따나 촌지 같은 한국의 교육현실을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고나리(이영유)는 심하나(김향기)를 점점 심하게 괴롭히고, 나리 엄마(변정수)의 치맛바람도 나날이 거세진다. 좀더 ‘센 장면’에 집착하고 이를 이용해 눈길을 끄는 데 머문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막장’스럽다. 지난주엔 김서현(김새론)의 아버지가 식물인간이라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신파까지 더했다. 그 사이 아이들이 스스로 마 선생에게 맞서며 성장해나간다는 원작의 줄거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막장과 신파라는 센 양념이 더해지면서 시청률이 조금이나마 올랐다는 점이다. 결국 한국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현실에 눈을 뜨라는 꾸짖음이 아니라 ‘요즘 애들이 저래? 요즘 학교가 저래?’ 하며 드라마가 주는 자극에 경악하고, 또 한편으로 ‘현실은 저 정도는 아니지’ 하며 안심하는 것, 딱 그만큼이 아닐까. 한국의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풍경은 ‘아빠 어디 가’의 목가적 가족 캠핑장이나 ‘여왕의 교실’의 비현실적 잔혹동화 중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