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와 U-20 월드컵 8강 연장전 종료 직전 중거리 득점포로 ‘깜짝 스타’가 된 정현철(가운데)이 가족들과 함께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인천국제공항|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트위터 @sangjun47
U-20 이라크전 교체 예고에 만반의 준비
헤딩하러 들어갔다가 뜻밖에 발로 득점
아버지 문자응원…남몰래 눈물 흘리기도
“슬로 비디오 같은 생생한 장면이었어요.”
8일(한국시간) 축구팬들은 가슴 떨린 명승부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은 U-20 터키월드컵 이라크와 8강전에서 쫓고 쫓기는 진검승부를 펼쳤다. 연장 후반 실점하며 2-3으로 패색이 짙던 연장 후반 15분. 이광종 감독은 ‘승부수’를 빼들었다. 이전까지 단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던 187cm의 ‘장신 수비수’ 정현철(20·동국대)을 투입했다. 카드는 적중했다. 그는 미드필드 중앙 30여m에서 호쾌한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정현철은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이다”고 말했다. 3분 남짓 활약한 깜짝 스타의 탄생이었다. 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정현철과 아버지 정연홍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생애 첫 중거리 골
중앙 수비수답게 침착함이 최대 장점. 득점 장면도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게 슬로 비디오 같았다. 그는 “체력이 충분해 수비에서 빠르게 공격으로 올라갔다. (한)성규형이 공을 넘겨줬는데 수비가 붙어서 옆으로 슬쩍 공을 쳐놨다. 골키퍼 위치를 보고 슛을 때렸는데 운 좋게 상대 머리 맞고 골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생애 최고의 순간. 그러나 득점 이후 머리가 새하얗게 됐다. 세리머니 상황도 기억나지 않았다.
같은 시간 한국에서 축구를 보던 아버지는 감정에 북받쳤다. 늘 아들의 플레이를 묵묵히 보면서 냉정하게 평가하기만 했던 아버지. 월드컵에 나선 아들이 경기를 뛰지 못하고 실망할까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주전과 비주전을 가리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부담이 될까봐 통화는 일절 하지 않았다. 다만 몇 차례 문자 메시지를 남긴 게 전부였다. 그런 그도 아들의 득점이 터지자 북받친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다. 정연홍 씨는 “우리 아들 너무도 장하다. 훌륭하다”고 문자를 남겼다. 정현철도 아버지의 문자에 남몰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정현철의 아버지 정연홍 씨가 U-20 월드컵이 끝난 뒤 보낸 문자 메시지. 인천국제공항|박상준 기자
이젠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정현철은 “파워와 스피드를 키워서 2014아시안게임과 2016올림픽에서 당당한 주전으로 발돋움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연홍 씨는 “전체적으로 그림을 그려 나갈 수 있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