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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종합분석 없이 섣부른 발표… ‘조종사 과실’ 예단 우려

입력 | 2013-07-10 03:00:00

[아시아나기 착륙 사고]
■ 美 NTSB 조사결과 매일 언론 브리핑




한국 정부가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측에 “언론 브리핑과 인터뷰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미국 언론의 섣부른 예단이 사고조사 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NTSB 위원장이 직접 며칠간 언론 브리핑을 실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조사를 충분히 한 후 양측이 조사 결과를 같은 시간대에 발표하는 방안을 미국 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NTSB는 조사 결과를 수시로 발표하면서 “여러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미국 언론은 NTSB가 공개한 정보와 데버러 허스먼 NTSB 위원장이 인터뷰한 내용 등을 토대로 조종사 과실이 사고의 원인이었다고 사실상 단정하는 분위기다.

○ 미 언론 “조종사 경험 미숙” 단정 분위기

아직 사고 발생 초기인 현 단계에서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조사를 객관적으로 진행하기 힘든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사고 첫날인 7일 인터넷판을 통해 “NTSB가 조종사 과실 가능성에 조사 초점을 맞췄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다음 날 사고기를 조종한 기장의 운항 경험이 적다며 “조사 당국이 기체 결함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8일 “아시아나 항공기 기장이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처음 비행했다”는 사실을 비중 있게 전했다. 항공기 기장이 해당 기종의 조종 시간이 짧다는 점은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지배적인데도 미국 언론은 NTSB 발표와 함께 조종사 과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 관제 시스템 문제에는 눈감아

그러나 미국 언론은 관제 시스템이나 관제 설비 고장 등 사고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는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사고 당시 아시아나 214편이 처음 관제탑과 교신할 때 “28L 활주로에 착륙을 허가한다”고 말한 관제사와, 최종 교신을 한 관제사는 서로 다른 인물이었다. 관제 도중에 관제사가 교체된 것이다. 항공기 운항 상태에 대해 제대로 인수인계가 되었는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또 충돌 50초 전 관제탑 착륙 허가를 받은 이후부터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관제탑은 조종사들에게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다. 사고기 속도가 갑자기 느려진 충돌 16초 전에 교신이 이뤄졌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처음 아시아나 214편과 교신하던 관제사는 사고 당시 항공사 세 대와 동시에 교신하고 있었다. 관제사가 사고기의 상황에 집중하지 못해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정호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교신과 기체 결함 등의 문제도 미국 당국과의 합동 조사를 통해 충분히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단편적 정보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

미국 언론의 이런 ‘조종사 과실’ 위주 보도는 조사 당국인 NTSB가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허스먼 위원장은 9일 샌프란시스코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조종사 조사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그중 하나다.

NTSB는 8일부터 매일 브리핑을 통해 조종사들의 대화 내용과 시간대별 사고기 상황을 전하고 있다. 8일에는 조종사들이 충돌 1.5초 전에 갑자기 착륙 시도를 중단하고 기체를 상승시킨 사실을, 9일에는 사고기의 시간대별 고도와 속도를 공개했다. 모두 한국 당국에서는 “6개월 이상 분석해야 알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하던 결과들이다.

통상 사고 조사가 이뤄지는 동안에 개별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는 국제관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스먼 위원장은 사고가 발생한 7일 조사 당국 수장으로는 이례적으로 미 NBC, CNN 등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고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우종 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항행위원은 “객관적인 사고 기록이라도 종합적인 분석 없이 단편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세종=박재명·김준일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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