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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건우]공과대학이 제 역할 하려면

입력 | 2013-07-10 03:00:00


이건우 서울대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우리나라의 공과대학은 지금까지 사회가 기대하는 제 역할을 해왔을까? 아쉽게도 그 대답은 “아니다”이다.

필자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지만 현재 우리나라 공과대학은 창조경제에 공헌하기는커녕 본연의 역할을 하기에도 숨 가빴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나 대학이 연구비 지원이나 교수평가 시 논문 발표 실적에서 양적 실적을 중요시하다 보니 논문을 위한 논문이 양산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학문 후속 세대를 키우기 위해 대학원생들에게 많은 논문을 발표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공과대학이 순수과학을 탐구하는 자연과학대학과 다른 점은 기술개발과 활발한 기술이전을 통해 산업체가 경쟁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새 정부가 창조경제와 함께 강조하는 경제민주화가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 일방적인 지원을 한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경쟁력 여부가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공과대학의 고민은 좀 더 진지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과대학은 어떻게 산업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우선 학생들에 대한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공대다운 공대’ 색깔을 갖는 교육 개발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실험실습 교육과 산업체 연계 교육을 1∼4학년까지 고르게 분포시키고 전 학년에 걸쳐서 뭔가를 만들고 실험하는 교육을 강화해야 이들이 산업계에 진출하여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함께 공과대학 교수들에 대한 평가도 다양해져야 한다. 국가경쟁력을 위하여 바람직한 다양한 평가 지표를 마련하고, 교수 개개인이 자신의 커리어 목표와 부합되는 지표를 선택하고 이 지표에 의해 평가 받도록 하는 것이다.

더불어 대학원생들의 학위 수여 조건도 좀 더 다양화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는 학위 논문이 유일한 필수 조건이지만 학위과정의 다양한 산출물도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즉 컴퓨터 프로그램, 설계 작품, 산업체 프로젝트 리포트 등도 인정함으로써 이들이 기꺼이 산업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창의적인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하려면 연구형태도 다양해야 한다. 실험실 간, 학과 간 벽을 허물어 융합 연구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소속 학과가 다른 학생들이더라도 같은 목표 기술이나 제품을 대상으로 공동연구를 해 하나의 논문 제목으로 각각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학위수여 조건을 다양화할 수 있다면 이 역시 가능할 것이다. 공동의 연구목표 아래 각각 다른 연구결과물로 이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정부과제를 지렛대 삼아 전공 분야 간, 학과 간 벽을 없애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명확한 목표기술이나 제품을 설정하고 여러 분야 연구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과제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융합적인 연구를 유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과대학에 기술컨설팅 회사를 설립하도록 하는 것을 제안한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한 방편으로 벤처 창업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공과대학 교수들이 구성원이 되는 기술컨설팅회사를 만든다면 그 구성원 수만큼의 잠재적 벤처기업을 만드는 것과 유사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된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기대될 때 가장 열심히 일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벤처기업이 대기업이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그래서 스탠퍼드대 등 세계 유수의 공과대학이 벤처창업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우수한 연구 인력이 풍부한 공과대학에 기술컨설팅 회사를 만들게 하고 거기서 자신들의 기여도에 따라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받게 하면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건우 서울대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