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女風주역 3인, 한자리에서 유쾌한 수다
홍윤희 SK건설 상무 “여자 후배들 생각하며 스스로 밀어붙여”
박정화 현대산업개발 부장 “일할땐 튀지 않게 향수도 안뿌려요”
이정민 롯데건설 팀장 “술 못해 연예인 뒷담화로 친분 쌓아”
‘금녀(禁女)의 벽’이 어느 곳보다 높았던 건설업계. 여성 정규직 비율이 다른 산업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비(非)오너 출신 여성 임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건설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대림산업 GS건설 등 5대 건설사의 전체 직원 중 여직원 비율은 2008년 말 5.3%에서 올해는 7.4%로 상승했다. SK건설은 여직원 비율이 11.6%나 된다. 10대 건설사를 통틀어 첫 여성 현장소장도 등장했다.
이런 ‘여풍’의 주역인 홍윤희 SK건설 상무(52), 박정화 현대산업개발 부장(43), 이정민 롯데건설 팀장(37)이 한자리에 모였다.
박 부장이 1994년 현대그룹 여성공채 1기로 뽑혀 현대산업개발에 배치됐을 때 여성 동기는 3명뿐이었다. 신입직원은 현장부터 경험해야 한다는 전통에 따라 첫 발령지인 경기 고양시 일산 아파트 공사 현장으로 출근하자 인근의 다른 건설사 직원들까지 ‘여자가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 하는 얼굴로 구경을 왔다. 그는 19년 뒤 서울 강남구 신사역 인근 지하 4층∼지상 18층 규모의 ‘논현동 렉스타워’ 신축공사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현장소장이 됐다.
본보기집을 열 때면 일주일씩 지방 출장을 마다하지 않던 이 팀장을 두고 동료들은 “독하다”고 평가했다.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3개월 뒤 돌아오자 “그만두지 않고 돌아왔네”라는 인사가 이어졌다. 그가 입사했던 2003년 롯데건설의 여성 정규직원은 단 2명이었지만 현재는 사내 첫 여성팀장인 그를 포함해 총 43명에 이른다.
이들이 건설업계에서 리더로 인정받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홍 상무는 “항상 따라다녔던 ‘여성’ ‘최초’라는 꼬리표가 부담이자 동력이었다”라며 “내가 어떻게 해야 여자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란 고민 속에 스스로를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킬힐’을 사 모으기 좋아하는 박 부장은 일하는 현장에선 철저히 ‘동료’로 다가간다. “튀지 않고 동료로서 자리 잡는 것도 건설 현장에서는 중요한 일이거든요. 일할 때는 향수도 사용하지 않고 외모도 너무 여성스럽지 않도록 관리했습니다.”
과거에는 억지로 떼려 했던 ‘여성성’이 이제는 경쟁력이 되기도 한다. 집의 구매에서부터 인테리어까지 여성이 결정하는 시대가 된 덕분. “남성이 단순히 수납공간을 늘리는 데 치중한다면 여성은 가방, 청소기, 장갑, 아이들 장난감 수납장 등을 세분화해서 설계하죠. ‘여성의 속내’를 안다는 게 경쟁력입니다.”(이 팀장)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