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분이 흘렀다. 낯섦과 익숙함이 뒤집혔다. 13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은 연극 ‘보이첵’을 뒤늦게 보고 나온 밤. 서울 명동에서 청계천을 지나 경복궁까지 걸어오는 길에서 만난 모든 익숙한 풍경이 낯설었다.
심약한 군인이 마초 상관에게 아내를 뺏긴 뒤 살인을 저지른다는 단순한 이야기. 하지만 온몸으로 기괴한 자세를 이어가며 그 가련한 사내의 사연을 들려주는 배우들을 넋 놓고 바라보다 나오니, 태연히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19세기 독일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미완성 희곡을 2000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임도완 연출가(서울예대 교수)가 번민하는 초보 공연 담당 기자에게 e메일을 보내왔다.
―의자를 유일한 소품으로 쓴 이유는 뭔가요.
“다른 극단의 해석 방식과 크게 다른 부분이죠. 작품의 핵심을 건드리는 주제어가 ‘권력’이라 보고 도출한 오브제입니다. 원작 그대로 공연하면 2시간이 넘습니다. 의자와 신체를 사용해 다이내믹하면서도 명료한 스타일을 만들었다는 평을 해외에서 많이 듣습니다.”
―‘어렵다’고 고민하는 관객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 극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관객에게 생각의 공간과 시간을 요구합니다. 답을 들려주지 않으니 관심 있게 봤다면 뭐든 생각해야 할 겁니다. 무대미술가 출신인 스타 연출가 로버트 윌슨은 ‘연극을 갤러리 미술품처럼 봐야 할 시대가 왔다’고 했습니다. 미술관에서 훌륭한 작품을 보면서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각자의 상상력과 사고를 동원해 묵묵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죠.”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