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 앞둔 울산… “닭-돼지 살려”
삼계탕을 통째로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건장한 체구의 직원들이지만 입맛은 섬세하다. 내장과 목은 물론 날개 끝부분, 배의 지방, 꼬리 부분까지 제거했다. 물이 펄펄 끓는 대형 솥에 한 번에 닭 130∼150마리와 수삼, 황기, 대추, 마늘을 함께 넣자 국물은 점차 진한 빛깔로 변해갔다. 곧 삼계탕의 풍미가 식당 주변에 진동했다. 이날 울산의 기온은 오전에 이미 33도를 넘어 11시 첫 폭염경보가 발령됐다.
초복(13일)을 이틀 앞둔 11일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식당에서 근로자들이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풍경도 비슷하다. 식사량이 5만 명분에 육박하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9일 보양식으로 한방삼겹살 수육을 내놓았다. 이날 쓰인 삼겹살은 총 14t으로 수육을 써는 데만 500여 명이 투입됐다. 식당에서 먹는 삼겹살 1인분이 200g이라고 하면 한 끼에 7만 명분을 먹어치운 셈이다. 상추 2.5t, 양파 4.2t, 풋고추와 마늘이 각각 840kg 들어갔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쉽게 달궈지는 철판 위에서 용접 같은 작업을 해 체감온도가 높은 데다 무거운 철판이나 공구를 들고 높이 40m가 넘는 대형 선박 위를 오르내리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크다”며 “초복부터 말복 사이에는 원기 회복을 위한 특식을 주 1회 이상 제공한다”고 말했다.
○ 울산 경제 들썩이는 현대의 ‘초복맞이’
현대차는 국내 자동차업계, 현대중공업은 조선업계 최다 근로자 수를 자랑한다. 그런 만큼 두 회사의 초복맞이는 유난스러운 구석이 있다. 모든 임직원이 초복에 함께 보양식을 먹는 게 회사 설립 초기부터 하나의 문화로 이어져 오고 있다. 손윤락 현대차 울산공장 복지후생팀 차장은 “땀을 많이 흘리는데 온 임직원이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함께 삼계탕을 먹고 힘을 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가족의 여름나기는 지역 식음료업계와 유통업계도 들썩이게 한다.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에 하루치 식재료를 공급하는 2.5∼5t 트럭만 30여 대에 이른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식재료도 들어오지만 이때도 울산지역 유통망을 거치는 만큼 지역경제에 긍정적 요소다.
현대그린푸드는 한 달 전에 미리 메뉴를 짠다. 막대한 양의 식재료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서다.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식당의 메뉴가 겹치지 않게 한다. 두 곳이 같은 메뉴를 정하면 한 번에 8만 명 이상의 식재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범현대가의 초복맞이에 지역사회 전체가 술렁일 정도로 울산에서 현대는 단순한 기업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울산 시민은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현대와 연결된다는 말은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차 직원과 1∼3차 협력업체 직원을 모두 합하면 약 15만 명. 4인 가족 기준으로 60만 명이 현대차와 관련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울산 전체 인구가 약 115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이다.
구성원들의 자부심도 남다르다. 한 현대차 관계자는 “결혼식장에 하객으로 참석할 때 정장 대신 현대 점퍼를 입고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며 “그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회사는 함께 먹는 식사부터 꼼꼼하게 신경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홍정수 인턴기자 고려대 통계학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