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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종수]부모를 때리는 아이들이 많다는데…

입력 | 2013-07-13 03:00:00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주말이면 나는 강원도로 간다.

도시의 오염을 피하고 싶어, 깊은 산속에 주말농장을 마련했다. 처음엔 그냥 씨만 뿌려두면 되는 줄 알았더니, 농사는 그게 아니었다. 참외는 가지치기를 해줘야 하고, 토마토는 쓰러지지 않도록 기둥에 매어주어야 한다. 참외는 엿장수 수준의 가위질을 요구하고, 토마토 농사는 거의 매듭공예에 해당한다. 그러나 농사일이 고되기는 하지만 깨끗한 개울물과 저녁녘의 바람이 황홀감을 선사한다. 사라진 줄 알았던 별들도 아직 거기에는 있다.

그런데 지난주 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서울에서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하고 있는 분인데 쉴 만한 곳을 찾으러 왔다는 것이다. 그분 내외에게 점심을 대접하며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며칠째 나는 그 생각에 잠겨 있다.

그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서울의 외국어고등학교 옆에서 병원을 하고 있다. 중학교 때 전교에서 1, 2등을 해야 입학할 수 있는 외고여서,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와 학생들이 부러워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외고 학생을 포함하여 부모 구타로 정신건강의학과에 오는 학생이 1년에 서른 명쯤 된다는 것이다. 부모를 구타하는 아이들 중 약 20%만이 정신건강의학과로 온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제 현실은 더 심각할 터였다.

얼마 전에는 여자친구를 사귀는 남학생이 자신의 아버지를 구타하여 찾아오게 되었다. 여자친구의 아버지보다 자신의 아버지 수입이 형편없어 이게 뭐냐고 구타했다는 것이다. 뒤이어 찾아온 다른 여학생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엄마는 왜 저런 놈하고 사느냐”며 소리를 질러댔다고 한다. 아버지가 옆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우리는 이미 학교폭력이라는 말에는 익숙하다. 하도 익숙하여 학교폭력 정도는 그냥 학교생활의 일부려니 할 뿐이다. 작년 교육부 조사에 의하면,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3에 이르는 전국의 응답자 139만 명 중 12.3%인 17만 명이 최근 1년 동안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하였다. 오죽 학교폭력이 심하고 학교를 신뢰하지 못하면 심부름센터가 돈을 받고 보복해주는 영업에 나섰겠는가.

자식에 의한 부모 구타는 학교폭력보다 훨씬 심각한 윤리규범의 막장에 해당한다. 의사의 이야기가 하도 충격적이어서 필자는 서울로 오자마자 청소년상담센터에 전화해 확인을 해보았다. 이곳의 담당자 역시 부모 구타를 “어렵지 않게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청소년상담센터가 자식의 부모 구타를 별도로 집계하지는 않지만, 작년 서울에서 상담받은 2만9064건의 청소년 폭력사건 가운데 부모 구타는 ‘종종 볼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왜, 그리고 어떻게 부모를 구타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만 가는 것일까.

학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부모를 구타하는 청소년의 80%는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억압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고, 나머지 20%는 반사회적 성격과 정신이상 때문이다. 일부가 성격적 이상 때문에 그런 거라면, 대부분은 부모의 성과지향적인 억압 탓에 빚어진 참극이라는 것이다. 모든 문제라는 것이 개인의 심리상태와 사회적 환경이 결합되어 발생하는 것이지만, 부모 구타의 경우 공부를 매개로 하는 부모의 억압이 훨씬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소수의 빗나간 아이들만이 부모를 패는 게 아니라, 최고의 엘리트라는 청소년들까지 부모를 구타하는 지경이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식에 대한 관심이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관심과 돈을 잘못 사용하여 아이들을 분노로 폭발하게 만든 셈이다.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채 공부의 전사로 사육되다가 과도한 요구와 질책에 노출되는 어느 순간 아이들은 역으로 부모에게 주먹을 쥐고 달려들게 된다.

부모 앞에서는 낯빛을 온화하게 해야 한다는 소학(小學)의 가르침이 이제는 낯설다. 리더의 덕목으로 효(孝)를 근본으로 쳤던 사회적 분위기도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걸 안타까워 하지만 그 책임을 아이들에게 돌릴 수가 없다. 자식의 공부와 출세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간섭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자식 농사가 저절로 잘되고 효도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이대로는 행복한 나라도 선진국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오대산 숲길을 걸었다. 울창한 천년 숲길은 여전했다.

자식에게 구타를 당하고 병원을 찾아온 부모의 딱한 마음도, 고등학생이 되도록 18년 동안 내면화하지 못한 사회규범을 며칠 안에 아이들에게 입력시켜야 하는 의사의 고충도, 이런 문제에 대한 나의 걱정스러운 질문들도 숲은 순화해주는 듯했다. 부모를 구타하는 어린 영혼들의 손을 잡고 그 길을 걷고 싶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