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티노 평전/곽차섭 지음/400쪽·3만 원/도서출판 길
당대엔 제법 인기 있는 통속작가였다. 그가 이탈리아어로 발표한 시, 대담집, 전기, 희곡을 포함하면 수십 편에 이른다. 하지만 돈벌이가 됐을지는 몰라도 문학사에 이름을 올릴 만큼 비범한 작품은 없었다.
작가라지만 당시 지식인 대접을 받으려면 반드시 알아야 했던 라틴어도 몰랐다.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아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빈치 마을의 레오나르도’라는 뜻으로 후대에 붙여준 호칭)처럼 원래 성(姓)도 없었다. 아레티노는 고향인 이탈리아 피렌체 동남쪽의 아레초 마을 출신 사람이란 뜻에 불과하다.
이 사건은 평생 그의 뒤를 쫓아다니는데 아레티노는 “그것(성기)을 작은 천이나 비단 조각 속에 가둬 놓아야 하겠는가. 사실 가둬 놓아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손일 것이네. 왜냐하면 그것으로 도박을 하고, 음란한 손짓을 하고 남을 죽이기까지 하기 때문이지”라고 멋들어지게 반박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18세기 사드 후작과 20세기 D H 로런스의 선구다.
저자가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아레티노가 맨주먹으로 시작해 교황과 군주, 귀족, 당대 최고 예술가와 교류하며 그들을 쥐고 흔드는 독립적 지식인으로서 ‘군주를 벌하는 채찍’이라는 찬사까지 끌어낸 ‘개룡남(개천에서 용 난 남자)’이라는 점이다. 서양사 주류에서 벗어나 있는 트릭스터(경계인)에 주목해 방대한 사료와 논문을 섭렵하며 그의 삶을 세밀히 추적한 책을 한국 필자(부산대 교수)가 펴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