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脫스펙 전형’의 그림자
현대자동차 인사담당자들의 눈에 띄기 위해서다. 현대차는 최근 학교 성적, 영어시험 점수, 자격증 등 ‘스펙’을 보지 않고 인성을 중점 평가하는 채용 프로그램 ‘The H’를 도입하고 이에 걸맞은 신입사원 후보들을 발굴하기 위해 주요 대학가에 인사담당자들을 배치했다. 후보가 되면 4개월간의 심층 인성평가를 거쳐 곧바로 최종면접을 치른다.
이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처럼 방학을 보내는 지방대생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안다”며 “어떻게든 인성을 어필할 수 있는 경력을 많이 쌓으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대학을 졸업한 조모 씨(26·여)는 최근 방송댄스 학원에 다니고 있다. 3월 중견기업 입사시험에서 탈락한 그는 내세울 만한 장기가 없는 것이 큰 약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종면접 때 경쟁자들이 노래와 춤으로 면접관들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동안 자신은 쭈뼛쭈뼛하며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던 것이다. 그는 “면접시험을 치른 20여 개 기업 중 장기자랑을 해 보라는 데가 3곳 정도 있었는데 우물거리다 나오곤 했다”며 “방송댄스를 익혀두면 취업 때 한 번은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강대의 한 취업 스터디반은 ‘봉사활동’ 시간을 정해 놓고 있다.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는 강모 씨(28)는 “봉사활동에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면접 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아 스터디반 멤버 모두 격주로 보육시설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취업 준비생들은 삼성그룹의 인성면접에 대비해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는지 분석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예컨대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무단횡단을 하지 않으면 늦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예상 질문을 내고 토론을 거쳐 도출한 ‘모범 답안’을 달달 외우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또 진짜 창업이 목적이 아니라 이력서에 적기 위해 창업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는 취업 준비생들도 있다.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이 같은 ‘벼락치기’식 대비는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취업을 위해 단기간에 인위적으로 쌓은 봉사활동이나 경력은 면접 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과정에서 대부분 드러난다”며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봉사활동 전문가나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 일할 ‘동료’를 뽑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