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싸르락 싸르락!” 날비가 갈마들며 나뭇가지 사이를 노닥거렸다. 처음엔 잠결에 싸리비로 마당 쓰는 줄 알았다. 아니, 암소가 풀 뜯는 소리인가. “차르르! 차아아∼” 잘 달군 프라이팬에 밀가루파전 부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칭얼칭얼 연한 빗소리는 귓속을 슬몃슬몃 무시로 들락거렸다.
“우르르! 후두둑!” 한밤중 느닷없이 후려치는 채찍비에 어슴푸레 눈두덩이 들렸다. 얼떨결에 덩달아 등짝이 얼얼했다. “쏴아∼우수수” 뒤란 대숲 바람 소리가 허리를 거의 절반쯤 꺾으며 자지러졌다. “와다닥!” 자개바람은 빗방울들을 사정없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우∼욱!” 나뭇가지들도 몸에 내려박히는 빗금눈물에 연신 신음을 토해냈다. 땅바닥 지저깨비들이 부딪치며 콩켸팥켸 억박적박 왁다글왁다글 시끄러웠다.
장끼 식구들은 어찌 살고 있을까. 산쑥 먹고 사는 산쑥들꿩은 쑥 덤불 밑에 그대로 있을까. 목도리들꿩은 천근만근 축 처진 목도리에 엄청 답답해할 거야. 뾰족꼬리들꿩은 꼬리가 무젖어 물에 빠진 생쥐처럼 볼만하겠다.
‘꿩 꿩 장 서방, 어디 어디 사나? 저 산 너머 솔수펑이 아래, 우리 집에서 살지. 무얼 먹고 사나? 꼬진 다리 이밥에, 눈 꼽재기 조밥에, 그럭저럭 사네. 누구하고 사나? 꺼병이새끼들하고 넘노닐며 살지.’
새벽녘 자다 깨다, 꿈인가 생신가, 어칠비칠 설핏 잠이 들었나 했더니 “우르르 쾅쾅!” 우레비가 쏟아졌다. “처얼∼철철!” 양동이로 물 퍼붓는 소리, “따다닥! 다닥!” 땅을 쇳덩이로 다지듯 짓누르는 소리, “투다닥! 투닥!” 콩 타작하듯 땅바닥에 뭇매를 치며 휘몰아치는 소리. “꾸르르∼ 콸콸!” 계곡 청석돌징검다리를 거침없이 훑고 지나가는 붉덩물소리. “두두둑! 후두둑!” 떡갈나무 잎사귀에 장구 치듯 내려치는 빗방울 소리….
“구구구우∼ 과아과아∼” 멧비둘기의 뭉툭한 울음에 눈을 떴다. 물안개 아침. 축축하고 진한 나무 냄새가 온 천지에 가득했다. 하늘은 말갛게 벗개었다. “땡그랑 땡 때앵∼” 풍경 소리가 맑게 울렸다. 공양간 아침밥 짓는 연기가 뭉클뭉클 땅바닥에 낮게 깔렸다.
그렇다. 눈을 감으니 저잣거리의 그리운 소리들이 한꺼번에 물무늬 져 어른거렸다. 속세와 절집이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짤랑짤랑! 외양간 워낭 소리, 푸우! 푸우! 황소의 콧김 소리, 우당탕! 골목길 아이들 발자국 소리, 후루룩 훌훌! 비 오는 날 허겁지겁 짜장면 먹는 소리, 딸그락 짤그락! 둥근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 분주한 수저질 소리, 개골개골 맹꽁맹꽁! 무논 가득한 개구리들 경 읽는 소리. 음메∼! 갓 난 송아지 어미 찾는 소리….
지국총 찌그럭! 먼 바다 까치놀을 등지고 오는 고깃배의 노 젓는 소리. 처얼썩 철썩! 바닷가 암자 구석방에서 듣는 파도 소리. 파아! 파아! 동틀 무렵 연꽃봉오리 앞다퉈 터지는 소리. 후두둑 후둑! 찌물쿠는 땀벌창 찜통날씨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오호! 절집 하룻밤, 소리공양 한번 참 잘했다. 귀가 순해졌다. 마음이 둥글어졌다.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