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의 역사인식 부재 시험으로 해결될까‘역사교육 강화’ 방안 2000년대 들어 세 번째인데도 성과 별로 없어시간 걸려도 근본 대책 필요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사회 과목의 하나인 ‘경제’를 예로 들면 고등학교에 진학해 경제 과목을 따로 선택하지 않으면 중고교 6년 동안 18시간의 수업을 받는 데 그친다. 반면 중학교 역사 수업은 170시간, 고교 한국사 수업은 85시간 등 중고교에서 모두 255시간을 배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역사 과목을 시험 평가기준에 넣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역사는 국민의 혼 같은 것”이라고 했다. 한국사가 우선순위에서 크게 앞서는 과목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회 과목이 소홀해지거나 무시되어서도 안 된다.
지난해 수능에는 62만 명이 응시했으며 올해도 비슷한 인원이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 진학과 직결되어 있는 시험에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면 자라나는 세대들이 역사 공부를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수능은 어디까지나 교육의 성과를 측정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학생들을 시험에 묶어 놓는 방법을 통해 역사인식을 높이겠다는 접근 방식은 한국 교육의 무능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교육에서 창의교육과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창의교육을 위해서는 상상력을 키우는 문화예술교육이 요구된다. 인성교육을 위해서는 윤리교육이 충실해져야 한다. 그렇다고 수능에 문화예술과 도덕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 부담만 늘릴 뿐이고 실효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원칙적으로 학교에서 관련 교육이 잘 이뤄지는 것이 우선이다.
‘역사교육 강화’ 방안은 2000년대 이후에만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한 차례씩 나왔다. 2003년 말 중국의 동북공정이 우리나라에 알려졌다. 고구려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킨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반중(反中) 감정이 폭발했다. 2005년 여름 일본 도쿄 도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미화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중학교 1학년 교과서로 채택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에 맞서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며 국사교육발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를 중심으로 2006년 12월 역사교육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2011년 4월에도 이명박 정부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역사교육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그때마다 역사교육은 확대되어 왔다. 역사 과목이 사회 과목에서 독립하고 수업 시수가 늘어났으며 한국사가 고교 수업에서 필수 과목이 됐다. 꽤 공을 들였는데도 청소년들이 역사적 사실에 무지하거나 민주화를 부정적 의미로 알고 있는 등 성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역사교육이 모자라서인지, 아니면 역사교육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 번 더 강화 대책을 내놓는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사 교육 강화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자국(自國)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역사는 불가피하게 주변 국가에 대한 배타적 인식과 민족주의를 키우게 된다. 한국은 수천 년 동안 중국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역사를 형성해 왔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교류가 빈번해진 오늘날은 더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중국 일본이 민족주의 역사교육에 나선다고 해서 우리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역사교육에서는 공존과 상호이해의 가치도 중요하다. 한국사와 함께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를 같이 이해하도록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