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아들에게 독극물을 탄 음료수를 먹여 살해한 뒤 달아난 아버지가 공소시효 만료 하루를 남겨놓고 불구속 기소됐다. 범인이 붙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이 기소한 것은 살인사건의 경우 기소한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15년 더 연장되기 때문이다.
울산지검은 김모 씨(64·무직)를 살인 등의 혐의로 17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1998년 7월 19일 오후 6시경 초등학교 6학년인 막내아들(당시 12세)과 함께 울산 남구 삼산동의 모 백화점 지하 1층 식품매장에서 음료수 3개를 구입했다. 그는 사흘전부터 같은 매장에서 매일 같은 음료수를 한 개 씩 구입해 고독성 살충제인 '포스파미돈'을 주사기로 주입해 놓았다. 포스파미돈은 솔잎혹파리 등의 방제에 사용되는 것으로 독성이 강해 지난해부터 판매가 중단됐다.
김 씨는 19일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샌드위치를 구입한 뒤 이날 구입한 음료수 대신 독극물이 든 음료수를 아들에게 줬다. 아들은 독극물 음료수를 마신 직후 아버지에게 이상 증세 호소했다. 김 씨는 병원에 연락은 않은 채 백화점 측에 "음료수에 이상한 약품이 들어간 것 아니냐"며 항의했다. 아들은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7월 22일 0시 50분경 숨졌다.
경찰은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7월 24일 오전 7시 반경 도주했다. 경찰은 김 씨를 추적했지만 행방을 찾지 못했고 2000년 12월 30일 기소 중지했다.
그러나 검찰은 최근 공소시효 임박 사건을 점검하던 중 김 씨 사건에 주목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음료수 유통과정에서의 살충제 혼입 개연성이 거의 없고 △첨단 과학수사기법인 진술분석기법을 활용해 김 씨의 진술을 분석한 결과 '아들을 잃은 피해자가 아니라 아들에게 살충제 음료수를 먹인 사람의 진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취지의 결과를 확보했다. 검찰은 김 씨가 백화점과 음료수 회사를 상대로 돈을 갈취하기 위해 저지른 범행으로 보고 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