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
15일 청개구리 아동지원센터에 모인 어린이들과 선생님들. 방과 후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에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교과학습을 하거나 요일별 특별수업을 한 뒤 저녁밥까지 해결하고 집으로 향한다. 청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하나, 내 이름은 ‘청개구리’
저는 힘들게 태어났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아파트를 지으며 기계실, 배선 등을 위해 사용하는 피트(PIT)층 한쪽에 저를 만들었습니다. 사회단체인 ‘함께 사는 우리’에게 맡겨 공부방으로 운영하려 했지만 제가 공부방이라는 이름을 갖기까지 시간이 적잖게 걸렸습니다. 저의 탄생을 마뜩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까닭입니다.
아이를 둔 부모님은 ‘대환영’이었지만 맞벌이 가정이 많다 보니 부모를 만나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7시 반부터 아파트 앞을 지키다 불이 켜지는 집이 있으면 재빨리 달려가 벨을 눌렀죠. 3주일 동안 주말도 반납한 채 뛰어다니고 나서야 가까스로 주민 동의 비율 70%를 넘겼습니다.
2010년 4월 우여곡절 끝에 제가 탄생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들도 ‘간식 주고 시간이나 때워 주겠지’라며 제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저 이래봬도 제법 인기가 높답니다. 이곳 성화초등학교 선생님들도 저를 잘 알 정도입니다. “어느 학원 다니니?”라는 선생님들의 질문에 “청개구리”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던 덕분입니다.
제가 ‘명물’이 된 데는 우리 가족들의 공이 큽니다. 지금도 다음 주 체험학습을 위해 전화를 돌리고 있는 박정은 센터장님(31)이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이에요. 어린이집에서 일했던 박 센터장님이 처음 왔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다 큰 초등학생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세 아이들을 휘어잡더니 요일별 특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제게 오는 어린이들은 숙제만 하지 않습니다. 월요일에는 미술, 화요일에는 전래놀이, 수요일에는 미디어교육, 목요일에는 체육, 금요일에는 독서수업이 진행됩니다. 요일별 선생님이 다 다르지요.
아이들에게 수박 간식을 챙겨주고 있는 이구영 선생님(21)도 빼놓을 수 없지요. 선생님 세 분 가운데 가장 어려서 ‘막내’인 그는 충북대 전기공학부 학생으로 이곳에서 공익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굉장히 싫어했다는 그가 어떻게 우리 가족이 됐는지 저도 신기합니다. 본인 말로는 아이들과 거리감을 줄여보고 싶어 자청했다네요.
둘, 아이들의 ‘오후’가 달라졌어요
비치볼을 만드는 미술시간. 아이들이 바람을 불어넣느라 정신이 없네요. 비치볼에는 갈매기 그림은 물론이고 ‘늘 행복하게 살기’ ‘소녀시대 보고 싶다’ 같은 아이들의 소원이 새겨져 있습니다.
임대아파트 아이들에 대해서 처음부터 ‘편견’이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 때문에 애정에 목말라 하지 않을까, 움츠러든 모습은 아닐까…. 하지만 공부 욕심도 많고 친구들을 잘 돕고 얼마나 야무진지 괜한 걱정을 했나 봅니다.
저쪽에서 웃고 있는 5학년인 나빈이는 3년 넘게 저와 함께했습니다. 자연스레 청개구리 신입생들을 챙기는 건 나빈이의 몫. 아빠는 회사 일로, 엄마는 공장 일로 항상 바빠 학교의 숙제는 모두 제게 와서 해결합니다.
항상 붙어 다니는 3학년 효원, 효민은 이란성 쌍둥이. 얼마 전 우리 식구가 되기 전까지는 집에서 TV를 보면서 하루를 때웠습니다. 맞벌이 부모님이나 중학교 2학년 오빠는 저녁이 돼서야 집에 왔으니까요. 이제 TV 대신 저를 끼고 사는 아이들. 둘 다 미술수업에 열심이더니 꿈도 바뀌었습니다. 효민이는 요리사에서 미술선생님으로, 효원이는 선생님에서 화가로요.
부모님 가운데는 제 ‘열성팬’도 많습니다. 5학년 승민이와 2학년 수빈이 남매의 어머니(33)가 ‘팬클럽 회장’ 정도 된다고나 할까요. 주변에서 “아이들이 학원도 따로 안 다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성적도 잘 나오고 차분해졌어요”라고 물으면 제 자랑을 늘어놓으십니다. 건물 청소를 하는 어머니는 오전 8시 출근했다가 오후 4시에 퇴근합니다. 공부방이 생기기 전에는 초등학교 돌봄교실에 아이들을 맡기거나 시청의 ‘아이 돌보미 서비스’를 신청했습니다. 아이 돌보미도 시간당 3000∼4000원은 줘야 하는데 은근히 부담이 되셨답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제 공고를 읽자마자 눈이 번쩍, 아이들을 보내셨는데요. 제게 와서 하루에 문제집을 1단원 넘게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수빈이는 얼마 전 웅변대회에도 나가 상을 탔습니다. 고등학생도 떨던 대회에서 완벽하게 원고를 외웠지요. 오빠 승민이는 책을 손에서 떼지 않습니다. 지난번 사회시험에서는 5학년 전체에서 승민이가 1등이었다네요. 어머님이 아이들과 함께 제 자랑 할 만하겠죠?
셋, 함께한 기억이 있다면….
하루가 다르게 키가 쑥쑥 크는 아이들. 이번 여름방학에는 1박 2일 캠프, 체험학습, 야외영화제 등을 즐기며 ‘마음의 키’도 쑥 키울 예정이다. 청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다행히 성화동에는 청주시의 임대아파트 80%가량이 몰려 있습니다. 제가 사는 주공 1단지뿐만 아니라 2단지, 4단지, 5단지 모두 임대아파트입니다. 물론 민간 아파트도 몇 곳 있습니다. 저번에는 몇몇 친구들이 동급생 생일이라고 민간 아파트를 다녀오더니 “집이 엄청 좋다”며 부러워하는 눈치더라고요.
곧 중학생이 되는 친구들은 의류 브랜드도 알아갑니다. “나이키 신발 사고 싶다”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뉴발란스”라고 받아치는 아이도 있습니다. 청개구리 수업으로도 만족하던 아이들의 입에서 ‘피아노학원 가고 싶다’라거나 ‘수학은 학원을 다녀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옵니다.
자연스레 겪어야 할 일입니다. 그래도 혼자 집에서 보내던 시간 대신 또래의 친구, 형, 누나와 지낸 시간이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리라 믿습니다. 함께 웃은 기억은 끝까지 남아 있을 거니까요. 저와 함께 3년을 보내고 중학교 1학년생이 된 유진이가 아직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저를 찾아와 선생님들의 말벗이 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이번 여름에도 아이들의 일정은 빡빡합니다. 다음 주 서울 잠실에 있는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에 현장체험을 갑니다. 23일에는 공부방에서 1박 2일 캠프가 기다리고 있고 경제교육도 준비됐습니다.
“그래도 엄마 손으로 돌보는 게 낫다”라거나 “형편 어려운 애들만 가는 공부방에 우리 아이까지 보내고 싶지 않다”라는 수군거림도 주변에서 들립니다. 그렇겠지요. 제가 엄마만큼 따스하게 돌봐주지는 못하겠지요. 우리 선생님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유명 과외선생님만큼 성적을 올려주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29명의 아이들은 떠들썩하게 뛰어놀고 시원한 간식을 나눠 먹고, 부모님과 이번 여름 가지고 놀 비치볼까지 만들어 집으로 향했습니다. 전 그걸로 충분히 만족스럽네요.
습기만 가득하더니 갑자기 시원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떠나 적막해진 공간의 허전함을 빗소리로 채워 봐야겠습니다.
청주=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이지은 인턴기자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