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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北선박에 실린건 SA-2 사격통제 레이더 장비”

입력 | 2013-07-18 03:00:00

■ 국제 군사전문지-전문가 분석




국제 사회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도 북한이 미국의 문턱에서 쿠바와 미사일 부품을 거래하다 적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파나마 정부가 적발한 북한 국적 선박 청천강호에 실린 미사일 부품은 SA-2 계열의 지대공 미사일에 이용되는 사격통제 레이더 시스템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제 군사전문지 IHS 제인스 위클리가 16일(현지 시간) 밝혔다. 군사 장비에 ‘RSN-75 Fan Song(팬송)’이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지대공 미사일에 사용되는 레이더 장비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장비를 갖춘 미사일은 북한의 주요 방공망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B-52 전략폭격기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한국 전투기 요격 목적으로 도입됐다. SA-2 계열의 미사일 시스템은 팬송 사격통제 레이더와 함께 UV 캐빈, AV 캐빈 레이더를 갖추고 있다. 팬송 레이더는 목표물을 맞히는 데 필요한 핵심 장비로, 6개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할 수 있다. 탐지거리는 최대 120km에 이른다.

북한은 SA-2 계열 미사일을 약 1500기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전투기 요격에 동원되지만 공격용으로도 쓰일 수 있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쿠바는 청천강호에 실린 무기는 자국이 보유한 것이라고 16일 밝혔다. 쿠바 외교부는 “선박에는 240t의 구식 방어용 무기들이 실려 있었다”며 “수리를 위해 설탕 1만 t을 운반하는 북한 선박에 실어 보낸 것으로 수리가 끝나면 돌아올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기 품목이 볼가와 페초라 방공 미사일 2기, 미사일 9기의 부품과 예비부품, MIG-21 전투기 2대와 비행기 엔진 15개 등이라고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적발된 부품들이 북한이 노후화된 레이더를 대체하기 위해 쿠바로부터 들여오려던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IHS 제인스 위클리는 “북한 방공망은 세계에서 가장 촘촘하지만 미사일과 레이더 시스템은 노후화됐다”며 북한에 업그레이드 수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청천강호의 쿠바 정박 시점은 6월 26일 평양을 출발한 북한의 김격식 인민군 총참모장이 쿠바를 방문해 군사협력을 논의한 시점과 일치한다. 당시 김 총참모장은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면담하고 쿠바의 군사시설을 둘러봤다. 휴 그리피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연구원은 이를 두고 “그동안 북한과 쿠바 간의 미사일 커넥션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온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북한과 쿠바는 최근 7년간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밝혔다.

영국 해운정보업체 로이즈 리스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청천강호는 1월 25일 중국 톈진(天津), 4월 12일 러시아 보스토치니를 거쳐 5월 30일 파나마 발보아에 도착했고 6월 1일 파나마 운하를 통과했다. 영국 군사전문가 프랭크 가드너 씨는 BBC 방송에 “파나마 운하 통과 이후 선박의 행방이 묘연했던 동안 위성 자동추적 시스템을 일부러 껐을 가능성이 높다”며 “매우 의심스러운 행동”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그사이 쿠바에서 팬송 사격통제 레이더 장비 등을 실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피스 연구원은 “청천강호는 2010년 우크라이나에서 소형 무기와 마약 거래로 억류되는 등 국제 사회의 무기거래 감시 리스트에 올라있는 선박”이라며 “그런 배를 쿠바에 보낸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즉각 북한의 유엔 결의 위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섬에 따라 북-미 관계는 더욱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또 남한에 대화 공세를 강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기 거래를 하는 북한의 ‘이중적 태도’도 또다시 드러났다.

파나마 당국은 유엔을 비롯해 미국, 영국, 콜롬비아 등에 조사 지원을 요청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변인인 모라나 송은 “공식 지원 요청이 있으면 유엔 소속 전문가들이 이번 사안을 조사할 것”이라며 “만약 북한 선박에 무기나 관련 부품이 실려 있었고, 북한과의 무기 거래로 확인되면 명백한 유엔 결의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위원장인 실비 루카스 유엔 주재 룩셈부르크대사도 이번 사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파나마 정부의 공식 통보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북한 선박의 전체 5개 화물칸 가운데 한 곳에 대한 조사만 이루어졌으며 조사가 마무리되기까지는 최소 일주일이 걸릴 것이라고 CNN방송이 17일 전했다.

한편 패트릭 벤트렐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17일 “파나마의 북한 선박 적발을 지지한다”고 신속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 외교부 관계자도 ‘합법적인 정비 목적의 운반’이라는 주장에 대해 “명백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비 목적이든 아니든, 무기의 목적지가 북한이라는 것만으로도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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