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봉(1953∼)
상수리나무들아 상수리나무 둥치들아
너희들이 좋구나 너무 좋아 쓰다듬어도 보고, 끌어안아도 보고, 그러다가 상수리나무들아 상수리나무 둥치들아
나, 너희들 들쳐 업는구나 너희들, 나 들쳐 업는구나
우거진 잎사귀들 속, 흐벅진 저고리 속
으흐흐 젖가슴 뭉개지는구나
상수리나무들아 상수리나무 둥치들아
그렇구나 네 따뜻한 입김,
부드러운 온기 속으로
나, 스며들고 있구나 찬찬히
울려 퍼지고 있구나
너희들 숨결, 오래오래 은근하구나
상수리나무들아 상수리나무 껍질들아
껍질 두툼한 네 몸속에서 작은 풍뎅이들, 속날개 파닥이고 있구나 어린 집게벌레들, 잠꼬대하고 있구나
그것들, 그렇게 제 몸 키우고 있구나
내 몸에서도 상수리나무 냄새가 나는구나
쌉쌀하구나 아득하구나 까마득히 흘러넘치는구나
‘상수리나무들아 상수리나무 둥치들아.’ 사랑하는 대상의 이름을 입안에서 굴리는 달콤함이여. 화자는 그 이름을 신음처럼 뇌며 상수리나무를 쓰다듬어 보고, 끌어안아 보고, 어화둥둥 들쳐 업어도 본다. 이어지는 화자의 행위는 가위 섹스의 묘사다. 상수리나무가 어찌나 좋은지 그 체취에 녹아날 정도로 화자는 육정에 겹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어떠한 냄새도 기껍겠지만, 싱싱한 상수리나무니 얼마나 물씬 향기로울 것인가.
그나저나 나무도 사람들 때문에 고생이다. 이 시의 화자처럼 너무 좋아서 끌어안는 사람은 괜찮지만, 좋은 기를 받겠다고 온몸에 힘을 실어 곰처럼 등짝을 쿵쿵 부딪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담뱃갑에 적힌 문구대로, ‘당신의 매너가 방금 자연을 지켰습니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