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조 교수는 1989년 서울대 법대 대학원에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 ‘소비에트 사회주의 법·형법이론의 형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에서 학과 선배였던 김도균 씨(현 서울대 법대 교수)가 그 전해 한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8문장 342자, 즉 논문 한 쪽의 절반 분량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베꼈다. 그런데도 조 교수는 각주(脚註)에 독일어 원서에서 직접 인용한 것처럼 쓰고 있다.
조 교수는 “인용된 문헌은 내가 직접 읽은 것이기에 (김 교수의) 논문을 재인용하지 않고 원문을 직접 번역했다. …정밀하게 비교해 보면 인용된 외국 문헌의 문장의 배치나 번역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해명대로 정밀하게 비교해 보니 논문 한 쪽의 절반 분량이 토씨 하나 차이 없이 똑같았다. 이런 식의 거짓말을 해명이라고 하다니 세상이 엄한지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이 책을 서울대 법대 도서관에서 구해 봤다. 책의 뒷장에는 낡은 열람자 명단 카드가 남아 있는데 조국이란 이름이 적혀 있다. 조 교수가 논문을 쓰면서 1988년에 이 책을 빌린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가 책을 읽었다는 증거인가. 그렇지 않다. 책을 빌려놓고도 남의 번역을 갖다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독일어 원서를 혼자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음을 증명할 뿐이다.
그가 자기 논문에서 독일어를 쓴 곳은 5곳에 불과하다. 몇 자 안 되는데도 자연사를 Naturgeschichte 대신 Naturgeschite로 쓰고, 법철학을 Rechtsphilosophie 대신 Rechtphisophie로 쓰는 등 2군데가 틀렸다. 독일어를 조금만 알아도 틀릴 수 없는 철자다. 반면 영어는 훨씬 많은 곳에 사용했는데도 틀린 걸 찾을 수 없었다. 꼼꼼하지 않아 일어난 실수가 아니라 그가 독일어에 서툴다는 증거다.
서울대는 조 교수의 표절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변 씨의 주장에 따르면 조 교수 석사학위 논문에는 일본어와 영어 원서의 재인용 표절 의혹이 훨씬 많다. 지켜보는 눈이 많다. 서울대는 원서와 번역서를 일일이 대조해 표절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밝혀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의할지는 모르겠으나 난 우리나라에서 석사학위 논문이란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전에 논문 쓰는 법을 한번 연습해 보는 과정 정도로 생각한다. 그래도 기본은 자기 의견을 전개하는 곳과 남의 글을 인용하는 곳을 구분하는 것이다. 또 남의 글도 원서에서 인용한 것인지, 번역서에서 인용한 것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나도 석사학위 논문은 써봤다. 그래서 석사과정 학생들이 번역서에서 인용하면서 원서에서 인용한 것처럼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유혹에 빠져 실수를 했다면 솔직히 시인하고 반성하면 된다. 석사학위 논문이라면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고 본다. 공부가 업(業)이 아닌 연예인조차도 석사학위 논문 표절이 드러나면 사과하는데 조 교수는 반성은커녕 시인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