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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해제 MB5년]MB와 중동 형제들

입력 | 2013-07-20 03:00:00

“그대 눈 안에 머물고 싶으니” MB가 시를 읊조리자…




이명박 대통령(MB)이 2010년 5월 25일 청와대를 방문한 아랍에미리트(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자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현대건설 시절 만들어진 MB의 ‘중동 DNA’는 UAE 원전과 유전 사업을 만나면서 다시 깨어났다. 동아일보DB

‘그대 눈 안에 머물고 싶으니 눈물을 흘리지 마오./그러면 내가 머물 수 없으니….’

2009년 11월 초 청와대 본관 집무실. 이명박 대통령(MB)은 시구가 적힌 노트를 다시 꺼내 들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자가 젊은 시절 썼다는 시다. 서울시장 시절, 왕세자의 호감을 사 아부다비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아랍어 전문가에게 번역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왕세자는 “내가 시인 지망생이었던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며 MB에게 왕실 가족들을 소개시킬 정도로 감동했다고 한다.

MB가 이 시구를 다시 떠올린 건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보고를 받은 직후였다. MB는 임기 초부터 아부다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왕세자가 총괄하는 UAE 바라카 원자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유심히 지켜봤다. 유명환에게 입찰 상황을 수시로 보고토록 했다. 하지만 유명환이 보고해온 무함마드 왕세자의 말은 “프랑스에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중동만큼은 현대건설 시절부터 양고기와 ‘모래밥’을 먹어가며 잔뼈가 굵은 곳이었다. 당장 왕세자에게 전화를 넣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왕세자는 받지 않았다. 두 차례 더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 참모들은 급기야 MB를 말렸다.

참모 A 씨=“대통령님. 이렇게 여러 번 전화를 거시는 건 외교 프로토콜(의전)에 맞지 않습니다.”

MB=“이 사람아. 지금 수십 년 먹을거리가 날아갈 판인데 프로토콜이 뭐가 대수야. 계속 전화 돌려!”

청와대 참모들이 전화통에 매달린 지 이틀 만에 왕세자와 전화가 연결됐다. 왕세자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MB=“외교통상부 장관의 보고를 받아서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로 결정하시더라도 우리 실무진을 한번 만나줄 수 없겠습니까?”

왕세자=“원전 사업은 이미 결론이 났는데요.”

MB=“한국은 진심으로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왕세자=“정 그러시다면 일단 사람들을 보내 보세요.”

한숨 돌린 MB는 참모들을 긴급 소집했다. 그동안 뭐가 문제였는지, UAE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아야 했다, MB가 밤늦게까지 참모들을 ‘조사’한 결과, UAE가 원전 사업을 넘어 형제국으로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원하고 있었는데 우리 측이 이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MB는 당장 참모들에게 원전 사업을 고리로 국방, 의료, 정보기술(IT) 등 주요 분야에서 포괄적인 경제협력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한다. 동시에 MB는 비공식적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중동 특유의 정서를 파고들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미국 밴더빌트대에서 머문 적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당시 정부 고위 관료 중 밴더빌트대 출신을 급히 모았다. 밴더빌트대 경제학 박사인 이용걸 당시 국방부 차관(현 방위사업청장)이 MB 특사로 UAE를 방문한 데에도 이런 배경이 있었다.

MB는 이용걸로부터 ‘무함마드 왕세자가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는 보고를 받고 그야말로 전방위 압박에 들어갔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현 새누리당 원내대표),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장(현 경제부총리) 등으로 특사단을 꾸려 그해 11월 18일 비밀리에 UAE에 보냈다. 그야말로 특급팀이었다. 특사단은 왕세자에게 “원전 사업은 100년을 가는 만큼 한국이 사업자로 선정되면 수십 개 분야에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MB의 메시지를 거듭 전했다.

MB와 한국 정부의 압박에 무함마드 왕세자도 서서히 움직였다. MB는 몇 차례 더 전화를 한 끝에 그해 12월 중순 왕세자의 전화를 받는다.

“UAE를 직접 방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MB는 즉각 참모들에게 UAE 출장 준비를 지시한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2009년 12월 26일 MB는 1박 2일짜리 ‘원 포인트’ 외유에 나섰다. 처음에는 전화도 받지 않던 무함마드 왕세자는 직접 공항에 마중을 나오더니 MB를 자신의 전용차에 태웠다.

왕세자=“내일 저녁에 (선친을 모신) ‘그랜드 모스크’에 가시지 않겠습니까?”

MB=“그럼요. 그리고 포괄적 협력 방안과 관련해 우리 특전사를 보내 아부다비 왕실 경호원들을 훈련시켜 드리겠습니다.”

왕세자=“정말입니까?”

UAE를 비롯해 카타르, 쿠웨이트는 걸프 만 지역의 강국 이란에 대해 오랫동안 경계를 해왔다. 바로 그 점을 파고든 ‘히든카드’였다. 그러면서 왕세자도 기억이 가물가물했을, 청년 시절에 썼던 그 시를 다시 인용했다.

UAE는 왕정 국가. MB에게 마음이 끌린 무함마드 왕세자의 아부다비는 다음 날인 2009년 12월 27일 UAE 원자력공사(ENEC)를 통해 한국전력 컨소시엄을 400억 달러 규모의 바라카 원전 건설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아부다비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운이 따랐다”며 기뻐하던 MB는 원전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중동은 MB의 ‘기업가 DNA’를 다시 일깨웠다.

2010년 1월 초, MB는 핵심 측근인 곽승준 대통령직속미래기획위원장을 불렀다.

MB=“UAE와 포괄적으로 사업을 하기로 했잖아. 다음엔 유전이다.”

곽승준=“아니 대통령님, 원전은 우리가 기술이라도 있지만 유전은 채굴 기술도 없는데요.”

MB=“UAE에 매장된 석유만 1000억 배럴이야. 세계 6위라고. 그게 대부분 아부다비에 있어. 빨리 태스크포스(TF) 꾸려서 검토 들어가.”

일단 부딪치고 보는 MB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곽승준은 더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곽승준은 비공식 접촉이 많고 부적절한 로비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자원외교 특성상 TF 팀원 전원을 관료로 충원했다. 심지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파견 근무하던 검사도 넣었다. 곽승준은 TF를 꾸린 뒤 박수민 미래위 총괄기획국장과 함께 아부다비에 유전사업을 타진했다. 그러나 몇 개월 전 원전 때와는 달랐다. 아부다비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냉담했다.

곽승준의 회고. “세계 77위에 불과한 채굴 실력으로 미국 영국 등 메이저 석유 업체들만 들어와 있는 UAE 유전시장에 어떻게 발을 붙이려 하느냐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비아냥거리는 수준이었다.”

다시 MB가 나섰다. 일단 곽승준을 보내 친서를 전달했다. ‘석유 비즈니스가 아니라 전략적 협력자로서 한국을 봐 달라. 우리는 원전 사업으로 이제 형제국이 된 것 아니냐.’

하지만 무함마드 왕세자도 유전사업만큼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곽승준의 UAE행은 잦아졌고 그때마다 비슷한 내용의 친서는 끊임없이 전달됐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2010년 5월 왕세자가 한-UAE 수교 30주년을 맞아 방한하기로 한 것. 무함마드 왕세자는 아부다비의 실력자지만 대통령은 아니었다. 그래도 MB는 왕세자를 ‘정상’으로 파격 예우했다. 청와대에서 왕세자를 위한 만찬을 열기 전 좌석을 상대방을 서로 일직선으로 마주보고 앉는 아랍식으로 배치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왕세자의 마음도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왕세자가 귀국한 뒤 아부다비 석유공사(ADNOC)는 한국석유공사 측에 아부다비 3개 주요 유전 광구에 대한 데이터를 건넸다. “채굴 능력이 있는지 한번 테스트해 보겠다”는 사인이었다. “너희가 유전을 아느냐”는 기존 반응과는 확연히 온도 차가 있었다. 곽승준은 가속페달을 밟았다. 아부다비를 방문하는 것은 물론이고 왕세자 측근들을 초청해 서울 인근에서 스키를 함께 타며 설득에 나섰다. 특히 MB는 마지막 친서에서 왕세자를 이렇게 설득한다.

“한국은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산업화 경험이 있다. 아무것도 없이 조선, 반도체, 자동차 분야에서 세계적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진정한 형제국이 되면 이걸 아부다비에 전수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무함마드 왕세자가 UAE의 미래를 위해 석유사업 외에 조선, 반도체 분야 등에 오일 머니를 집중 투자하고 있다는 점을 파고든 것이다. UAE는 당시까지 이 분야의 노하우 전수를 위해 미국, 유럽 국가 기업들을 접촉했지만 핵심을 전수받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은 끝났다. 한국석유공사는 2010년 8월 아부다비 3개 주요 광구 독점 개발권을 따낸 데 이어 2011년 3월에는 최소 10억 배럴 이상의 원유 채굴권 계약을 할 수 있는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던 중동의 유전 채굴권이 처음으로 한국에 열리는 순간이었다.

2012년 초, 무함마드 왕세자는 인사차 아부다비를 방문한 곽승준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구여(My Friend), 이제 우리 가족과 당신들은 형제다. 이를 미스터 프레지던트에게도 전해 달라.”

MB는 2012년 11월, 임기 중 마지막 해외순방지로 아부다비를 택했다. 다시 만난 무함마드 왕세자는 수행단과 오찬을 하려는 MB에게 “주로 우리 형제들과 먹는 것”이라며 아부다비 왕실 전용 양고기를 보내주었다. MB는 “이게 바로 중동 스타일”이라며 접시에 놓인 양고기를 싹 비웠다. ‘형제’에 대한 각자의 감사 표시였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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