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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조원 빚더미 ‘車산업 메카’ 美 디트로이트 파산 신청

입력 | 2013-07-20 03:00:00

강성노조에 기업들 줄줄이 떠나… 부채규모 美 파산 지자체중 최대
빚으로 市운영비 충당하다 두손 들어… 재정적자 9조원 한국 지자체도 불안




‘세계 자동차산업의 메카’였던 미국 디트로이트 시가 빚더미에 허덕이다 결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디트로이트의 부채 규모는 역대 파산보호를 신청한 미국 도시 중 최대다. 시 정부가 갚지 못한 장기 부채는 최대 200억 달러(약 22조4400억 원)로 서울시 연간 예산(세입 기준 23조5000억 원)과 맞먹는다.

미 언론은 18일(현지 시간) 디트로이트 시가 이날 오후 미시간 주 연방법원에 파산보호(챕터9)를 신청했다고 일제히 주요 뉴스로 전했다. 파산보호 신청은 시 정부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 법원에 부채 탕감을 강제적으로 해달라고 요청하는 사실상의 부도 선언이다. 중앙정부의 지방재정교부금에 기대어 근근이 살아가는 한국 지방자치단체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강성 노조, 고임금에 ‘자동차 메카’ 추락 시작

디트로이트 시의 파산은 자동차산업에서 비롯됐다. 미국 1위 자동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 등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이 강성 노조로 인한 높은 인건비와 과잉 복지를 견디지 못하고 다른 주나 해외로 줄줄이 공장을 이전하면서 ‘성장의 동력’을 잃고 재정 상황이 악화됐다. 재정 악화로 공공서비스가 나빠지면서 중산층 백인들이 대거 탈출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특히 거대한 도시 인프라 유지와 공무원 연금 등에 나갈 돈은 계속 불어나면서 결국 채권 발행 등 빚에 기대 연명해 왔다.

릭 스나이더 미시간 주지사(공화)는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서와 함께 제출한 편지에서 “60년 동안 누적돼온 부채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은 파산보호 신청밖에 없다”며 이를 수용해줄 것을 법원에 호소했다.

3월부터 진행된 회생 노력은 지지부진했다. 주민 공무원 채권자 등 이해 관계자 모두 손실 부담을 거부했다. 3월부터 비상관리인으로 선임된 케빈 오어 변호사는 공무원 노조, 보험사 등과 손실 부담 규모를 놓고 협상을 벌였으나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시민들까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가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디트로이트 시민들의 탈세가 잇따랐지만 이를 적발해 낼 세무 행정 기능이 마비돼 시 재정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고 전했다.

○ 응급차 출동에 평균 1시간… 도시 기능 마비

“911(미국의 응급전화)에 전화를 걸면 너무 늦을지 모른다. (비상시에 대비해) 가족과 지인의 비상연락망을 갖춰 놔라.”

디트로이트의 병원들은 요즘 환자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긴급구조전화를 걸어도 달려올 앰뷸런스가 없거나 오더라도 1시간 이상 걸리는 게 다반사다.

NYT에 따르면 디트로이트 경찰의 범죄현장 출동 시간은 약 1시간(58분)이다. 지난해 플로리다 주에서 발생한 조지 지머먼 사건의 경우 경찰이 2분 내에 현장에 도착했다. 2011년 디트로이트의 범죄 발생 비율은 미 전체 평균의 5배에 이른다.

1950년대 180만 명으로 미국의 4대 도시임을 자랑했던 디트로이트의 시민은 현재 70만6000명으로 크게 줄었다. 시민의 3분의 1은 극빈층이다. 미국의 전체 실업률은 7.6%지만 디트로이트는 2배 이상이다. 가로등의 40%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도심 곳곳엔 7만8000채의 빈 건물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이처럼 치안 의료 전력 상하수도 등 기본적인 도시 기능이 마비되면서 디트로이트 시민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민이 내는 세금은 더 오를 수도 있다.

○ 지자체 파산 ‘강 건너 불’ 아니다

디트로이트 시의 파산은 세계 각국 지방재정 위기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재정위기를 맞으면서 지자체를 지원할 여력이 소진된 가운데 40여 개 지자체가 파산에 처했거나 파산 위기에 놓여 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시 재정이 바닥난 미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 시는 이미 지난해부터 공무원 임금을 최대 80% 삭감하고 세금을 한꺼번에 29%나 올렸다. 로스앤젤레스 역시 위태로운 상황이다.

경제대국 3위인 일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2006년 홋카이도(北海道) 유바리(夕張) 시가 지역 주력산업이었던 광산업이 쇠퇴하면서 360억 엔(약 4040억 원)을 갚지 못해 처음으로 파산 신청을 했다.

한국은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지방재정교부금을 보내주면서 어떻게든 재정적자를 막아주기 때문에 한 번도 지자체 부도가 발생한 적이 없지만 ‘강 건너 불’처럼 볼 일이 아니다. 올 4월 23일 안전행정부가 집계한 ‘지방자치단체 통합재정 개요’에 따르면 한국 지자체의 적자는 9조 원에 이른다. 김재훈 서울과학기술대 행정학과 교수는 “일부 지자체는 파산에 버금가는 상황”이라며 “한국도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 챕터9(Chapter 9) ::

지방자치단체의 파산절차를 규정한 연방 파산법 9조. 기업이나 개인의 파산절차를 규정한 다른 미국의 파산법에 비해 판사에게 주어진 재량권이 적다. 판사가 기업 또는 개인에게 하는 것처럼 자산매각 등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지시할 수 없고 지자체의 자체 역량에 구제 여부가 달려 있다.

뉴욕=박현진·도쿄=박형준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