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성과 홀로코스트/지그문트 바우만 지음/정일준 옮김/415쪽·3만5000원/새물결
현대성 또는 탈현대성의 문제를 천착해 온 폴란드 출신 유대인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88)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이 책(1989년 초판 발행)은 이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 사건을 유대인만의 특수한 비극으로 응축시킴으로써 현대 유대인들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로 이용하는 것을 비판한다. 나치가 학살한 2000만 명 중 홀로코스트로 학살된 유대인 600만 명만 부각시키는 것은 이 사건의 본질을 은폐, 왜곡하는 효과만 낳는다는 것이다.
가해자인 독일인에 초점을 맞춰 이를 특별 관리해야 할 질병으로 취급을 하는 것도 이 사건을 한정된 공간과 제한된 시간에 위생적으로 봉인하는 결과만 초래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 끔찍한 사건의 희생자들을 감동적 TV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소비할 수 있는 도덕적 심리적 거리감을 얻게 된다. 하지만 해나 아렌트가 지적했던 것처럼 그 생지옥을 겪은 사람들이 인간성의 일부를 상실했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