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는 많은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독일 BMW그룹의 ‘4시리즈’ 외관 디자인을 주도한 강원규 씨, 이탈리아 피아트의 ‘500L’ 내부 디자인을 총괄한 송명주 씨, 미국 포드그룹의 ‘올 뉴 링컨 MKZ’를 내놓은 강수영 씨는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인물들이다. 각 업체 제공
최근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한국인 자동차 디자이너 3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섬세함’, ‘절제미’, ‘인내심’ 등 한국의 전통문화나 생활습관에 바탕을 둔 한국인의 특성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세계가 인정한 한국 DNA
19일 독일 뮌헨의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한국인의 경쟁력에 대해 묻자 능숙한 젓가락질을 보여주며 답변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는 쇠젓가락으로 콩처럼 작은 것도 집고, 심지어 김치를 찢기까지 한다”며 “중국인과 일본인도 젓가락을 쓰지만 한국인의 섬세함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수많은 점, 선, 면이 조화를 이루는 자동차 디자인에서 디테일에 강한 한국인의 손은 큰 경쟁력을 갖는다는 설명이다.
이탈리아 피아트의 디자이너인 송명주 씨(41)는 지난해 9월 유럽에서 출시된 ‘500L’(친퀘첸토 5-도어 롱 모델)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총괄했다. 그는 16일 전화 인터뷰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는 엔지니어, 마케터, 소재 개발자, 인체공학자 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협업해야 한다”며 “조직을 중시하고 인내심이 강한 한국인들이야말로 이런 일에 적격”이라고 말했다. 협업의 중요성은 디자이너팀 내부에서도 필요하다. 송 씨는 “첨단 이미지가 강한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자존감이 무척 센 집단”이라며 “팀원들이 갖고 있는 다른 의견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율하느냐가 프로젝트 성공의 첫 번째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세계적 디자이너 반열에 올라 있는 미국 포드그룹의 강수영 씨(49)는 한국인의 ‘절제미’에 주목했다. 그는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 즉 보다 간결하고 단순한 것이 훨씬 많은 감동과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디자인 철학을 갖고 있다. 그는 “나를 포함한 한국인 디자이너들은 ‘절제된 선’과 ‘깨끗한 면’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여백의 미를 살렸던 한국 미술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18일 퇴근 직후 전화를 받은 강 씨는 “오후 8시쯤 퇴근할 때 보니 한국인 디자이너들만 회사에 남아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며 “끈기와 책임감도 한국인의 큰 강점 중 하나”라고 전했다.
○ 다양한 배경의 디자이너들
송 씨는 한국에서 사범대학을 졸업한 이색 경력자다. 가정교육을 전공하고, 의류학을 부전공한 그는 1995년 이탈리아 토리노로 디자인 유학을 떠났다. 이후 삼성중공업에서 잠시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2000년 피아트 디자인센터에 들어갔다. 13년간 피아트에서 디자인 작업을 한 그는 지난달 같은 그룹의 ‘알파로메오’ 브랜드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강원규 씨는 2001년 현대자동차에 잠시 몸담았다가 이듬해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에 있는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에서 공부했다. 이 학교 졸업 작품(2005년)은 그가 동경하던 BMW그룹에 갈 수 있는 ‘직행 티켓’이 됐다. 당시 BMW그룹 캘리포니아 디자인센터에서 근무하던 크리스토퍼 채프먼 씨(2011년 현대자동차로 이직)가 작품만 보고 일면식도 없던 강 씨를 회사에 강력히 추천했다. BMW 역사상 첫 한국인 디자이너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입사 후 나는 독일에, 채프먼은 캘리포니아에 있어 자주 보진 못했지만 4시리즈가 전 세계를 달리면 그도 흐뭇해할 것”이라며 “그것이 바로 디자이너들이 주고받는 ‘편지’인 셈”이라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뮌헨=이진석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