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있는 4대강은 설계가 아닌 지금을 따지고눈치 9단 감사원은 부끄러움을 느끼고구정권서 받은 설움은 신정권의 성공으로 복수하고나홀로 국정에 대한 우려는 귀 열고 머리 빌려 해소했으면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그렇다고 4대강 사업을 ‘태어나서는 안 될 사업’으로 낙인찍는 건 수긍하기 어렵다.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표치적이니까 더 흠집을 내겠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키를 재는데 목에 상처가 있다 해서 발뒤꿈치부터 목까지만 네 키라고 우기고, 지각 한 번 했더니 공부할 마음이 없는 것이라며 퇴학시키고, 판사를 염두에 두고 공부했으니 외교관 자격이 없다며 외무고시 합격자의 임용을 취소하겠다고 한다면 오버다.
대운하를 염두에 뒀는지는 감사원의 법의 창과 MB의 정치적 방패의 싸움이다. 감사원은 4대강을 파헤치고, 뚫고, 깨서라도 MB가 꼼짝 못할 증거를 찾아내는 게 떳떳하다.
양건 감사원장은 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2007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칼럼집을 냈다. 거기에 ‘새 감사원장이 해야 할 일’이라는 글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승헌 변호사를 감사원장으로 지명했을 때인 1998년 3월에 쓴 것이다. 그는 김 대통령과 한 변호사의 친밀한 관계를 소개하면서 “감사원의 독립성, 특히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독자성을 확보하느냐 여부에 따라 감사 기능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했다. 평소 친한 사이라도 일로는 멀어져야 한다는 충고다. 그런데 어찌해서 그는 MB정권 때는 잘 드는 칼을 갑 속에 숨겨뒀다가, 거리를 유지해야 할(아니, 이미 거리가 적당히 떨어져 있는) 새 정권에 아부하듯 칼을 빼 들었는지 모르겠다. 양 감사원장은 이상과 반대로 행동했다. 감사원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신구 정권이 싸우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가 2전투구(二戰投口)가 됐다. 두 정권이 험한 말을 주고받는다. 대선 경선룰 갈등에서 생긴 앙금은 친박계 공천 학살, 세종시 수정안 충돌, MB의 임기 말 특별사면, 원전비리 책임공방 등을 거치면서 돋친 가시가 더 뾰족해졌다. 그리고 이번 4대강 감사에서 또 충돌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MB 정권에서 받은 설움 때문일 것이다. MB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같은 콩깍지에서 탄생한 두 권력이 하나는 삶고, 하나는 삶기는 모습은 보기에 불편하다. 박근혜정부는 줄기세포다. 잘만 하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다양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상당수의 고정 지지층, 신뢰와 원칙에 대한 확고한 신념, 비리 유혹에서 자유로운 환경,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익힌 국정경험, 국제사회에서 통하는 여성 대통령의 매력 등은 박 대통령의 큰 자산이다. 그 자산을 전 정권과 싸우면서 소진할 이유가 없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나 그 시대에 대한 비판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시대에 피해를 본 일을 지금 운운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본인도 자신이 당한 피해와 그 불쾌함을 잠시 봉인하는 것은 어떤가. 성공이 최고의 복수다. 이미 그 반을 이뤘다.
그렇지만 참모나 각료들에게 ‘직을 걸고 바른말을 하라’는 얘기는 유보하겠다. 역대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모셔봤던 많은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깨달은 게 있기 때문이다. 참모나 각료들은 대통령의 지시에 자신의 소신을 바꿀 준비, 대통령의 깊은 지식에 놀랄 준비, 대통령의 국민사랑에 감동할 준비는 되어 있지만, 대통령의 판단이나 결정에 다른 의견을 제시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방법은 하나다. 대통령이 앞장서 ‘다른 말’이나 ‘다른 생각’이 오가도록 분위기를 잡는 것이다. 한 번만 해서도 안 된다. 쉽지 않은 일이긴 하나,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결단은 혼자서 하되, 귀는 열고 머리는 많이 빌렸으면 좋겠다. 일인불과이인지(一人不過二人智), 혼자서 두 사람의 지혜를 이길 순 없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