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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최영해]MB꽃사슴과 새롬이 희망이

입력 | 2013-07-23 03:00:00


최영해 논설위원

새롬이와 희망이가 청와대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대통령 취임식 날 서울 삼성동 이웃들이 선물한 진도개 2마리가 청와대에 들어간 지 어느덧 5개월. 박근혜 대통령이 관저에서 출퇴근할 때마다 꼬리를 흔들어 가족 없는 청와대 생활에 위안을 준다고 한다.

MB(이명박 전 대통령) 땐 꽃사슴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5월 서울대공원에서 2년 반 자란 암사슴 2마리와 수사슴 1마리를 청와대 경내에 놓아 먹였다. 짝짓기를 하면서 빠르게 번식해 퇴임 땐 26마리로 불어났다. 꽃사슴들은 청와대를 휘젓고 다니며 3300m² 녹지원(청와대 정원)의 풀은 물론이고 조경용 꽃까지도 먹어치웠다. 곳곳에 뿌린 오물이 골칫거리였지만 MB 부부는 꽃사슴을 자식처럼 아꼈다.

꽃사슴의 영화(榮華)는 여기까지였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 한 달도 안 돼 꽃사슴을 모두 서울대공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 잃은 꽃사슴은 고향에서도 푸대접을 받았다. 서울대공원은 26마리나 되는 꽃사슴을 수용할 데가 마땅찮아 경기도 한 농가에 모두 팔아치웠다.

꽃사슴의 자리를 차지한 게 새롬이와 희망이다. 대통령의 한 측근은 “요샌 마치 사냥개처럼 사나워졌다”고 했다. 청와대에 들어갈 때 털이 뽀송뽀송한 애완견이 더이상 아니라는 말이다. 낯익지 않은 참모들이 관저를 드나들 땐 귀를 곧추세우고 컹컹 짖어대 겁먹는 직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MB꽃사슴처럼 잘나가던 MB맨들도 줄줄이 옷을 벗었다. 금융계를 쥐락펴락한 ‘4대 천왕(天王)’이 새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짓눌려 찍소리 한번 못하고 물러났다. 여름휴가가 끝나는 8월말까지 방을 빼라는 통보를 받은 공기업 사장도 한둘이 아니다. 낙제점인 경영성적표를 들이댔지만 ‘MB맨 솎아내기’라는 말이 많다.

관가에선 요즘 ABM(Anything but MB) 인사라는 말이 유행이다. ‘MB사람만 빼고 다 좋다’는 박 대통령 인사스타일을 풍자한 말이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민주당 빌 클린턴 행정부 인사를 대대적으로 물갈이한 ABC(Anything but Clinton)를 본뜬 말인 듯하다. 노무현 정부 각료를 쓰는 한이 있어도 이명박 대통령 때 장차관 지낸 사람은 절대 안 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인사에서 실제로 그랬다. 같은 새누리당 뿌리인데도 이런 견원지간(犬猿之間)이 없다. 박근혜 국정과제를 한마디로 하면 ‘MB 지우기’라는 대답이 공무원들 입에서 쉽게 튀어나온다.

MB가 최대 치적으로 내세운 4대강사업은 ‘대운하 망령’이 돼 구천(九泉)을 떠돌고 있다. 양건 감사원장은 옛 주군(主君)을 정조준했다. 권력에서 독립된 감사원이 한 일이라고 얘기해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술수출의 쾌거라는 원전은 비리덩어리가 돼 검찰의 단두대에 올라 있다. 검찰 국세청 감사원 같은 사정당국의 기세가 워낙 등등해 공기업은 물론이고 정부 지분 하나 없는 민간기업의 최고경영자(CEO)마저도 밤잠을 설치는 판이다.

MB꽃사슴들이 청와대에 남아 있었다면 어찌 됐을지 궁금하다. 새롬이와 희망이가 기력이 쇠잔해진 꽃사슴들을 쫓아다니며 물어뜯진 않았을까. 대통령은 이런 새롬이 희망이를 말렸을지, 아니면 멀리서 그저 지켜보았을지 모르겠다. ‘박근혜’ 이름 석자만 나오면 부르르 떨었다는 MB 청와대의 모습과 교차된다.

미국 정치는 확실히 우리와 달랐다. 정적(政敵)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발탁해 외교 전권을 주면서 4년 내내 감싸 안은 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오바마 집권 1기 국무부는 ‘클린턴사단(師團)’이 쥐락펴락했고 미국의 외교는 클린턴 장관이 책임졌다. 두 사람이 당내 경선에서 서로 밑바닥까지 샅샅이 들춰가며 헐뜯기는 친박-친이의 벼랑 끝 싸움과 결코 다르지 않았는데 말이다. 녹지원에서 MB꽃사슴과 새롬이 희망이가 함께 어울려 뒹구는 세상은 애당초 상상하기 힘든 꿈이었던가.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