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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징금-배상-집단소송-고발… 4重처벌 버틸 기업 있겠나”

입력 | 2013-07-23 03:00:00

■ 30대 그룹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법안 독소 조항’




청와대와 정부가 ‘경제민주화법은 일단락됐다’는 신호를 재계에 잇달아 보내고 있지만 기업들이 느끼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상반기(1∼6월) 국회를 통과한 법을 구체화하기 위해 시행령을 만드는 작업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데다 하반기(7∼12월)에도 기업에 부담을 줄 법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규제에 집중했던 상반기와 달리 하반기 국회에서 논의할 법안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과 근로자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항들이 폭넓게 포함돼 있어 기업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 대표적 독소조항 ‘징벌적 손해배상’

징벌적 손해배상은 기업들이 꼽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30대 그룹 중 21곳은 남은 경제민주화 법안 중 공정거래법 위반 때 소비자 등이 입은 피해액의 3∼10배를 배상하도록 한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반기에 이미 통과된 하도급법상의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독소조항이라고 한 그룹도 22곳이었다. 이는 하도급법 위반에 최대 3배의 배상을 물리는 내용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법 위반으로 얻은 부당이익을 환수하고 피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도록 해 탈법 가능성을 낮춘다는 취지로 영국 미국 등에서 활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를 한국에 도입하는 것을 놓고 학계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국가가 징벌을 전담하는 대륙법 체계와 맞지 않고, 과잉처벌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30대 그룹의 한 법무담당자는 “과도한 보상을 노린 소송이 남발돼 기업 경영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상법 개정안에도 독소조항 수두룩

30대 그룹 중 12곳은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상법 개정안 중 ‘집중투표 의무화 조항’을 독소조항으로 꼽았다. 집중투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투표할 전체 의결권을 이사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이사 10명을 선임할 경우 1주를 가진 주주가 10표를 1명에게 집중 투표할 수 있어 그만큼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커진다.

법무부는 일정 규모 이상 상장회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는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해치며 투기자본이 기업 경영권을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 30대 그룹 관계자는 “2006년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은 집중투표제로 이사 1명을 KT&G 이사회에 진출시킨 뒤 회사가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의사결정을 유도했다”며 “지금처럼 주주들이 집중투표제 채택 여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상법 개정안 중 집행임원(미등기 임원)과 이사회를 분리하는 집행임원제 의무화 조항, 모(母)회사 주주가 자(子)회사 임원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다중대표소송 조항을 독소조항으로 꼽은 그룹이 각각 6곳이었다.

한 그룹 관계자는 “집중투표제와 집행임원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국내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역차별 규제로 경영권 불안을 초래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화학사고 과징금 매출액의 5%는 과도”


이미 통과된 법 중에는 5억 원 이상인 등기임원의 연봉을 공개하는 자본시장법 조항이 문제라는 그룹이 18곳이었다. 한 기업 관계자는 “곧이곧대로 지키려면 우수한 인재 영입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며 “변칙적 급여 지급을 조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업무상 과실로 화학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대 매출액의 5%를 과징금으로 물리는 화학물질관리법을 독소조항으로 꼽은 그룹은 16곳이었다. 이 조항은 5월 국회를 통과할 때도 석유화학업종 영업이익률이 3.3% 수준인데 과징금이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 기업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상당수가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수천억 원의 과징금을 받으면 일부 업체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다른 안전 관련 법령처럼 과징금 상한선을 금액으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논의 중인 법안이 모두 국회를 통과할 경우 대기업의 경쟁력이 악화되고 중소기업은 존폐 위기에 놓여 투자도 고용도 모두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