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일색(一色).’ 올 초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경남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와 관련된 주요 인물 대부분이 고려대 동문으로 밝혀지면서 ‘묘한 학연(學緣)’이 화제다. 경남도청 주변에서는 “일부러 만들려 해도 이렇게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취임 2개월 만에 의료원 폐업 방침을 정하고 강력하게 밀어붙인 홍준표 도지사(59)는 고려대 법대 행정학과를 나와 사법고시(24회)에 합격한 뒤 검사와 15∼18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의료원 폐업 업무를 총괄하는 윤성혜 복지보건국장(44·3급)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출신.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경남도 미래산업과장, 감사관 등을 거쳤다. 강단이 있고 일에 관한 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폐업을 주도하는 쪽보다 이를 저지하려는 ‘수비 쪽’에 고려대 출신이 더 많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유지현 위원장은 고려대 간호학과를 나와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근무했다. 폐업 저지를 위해 삭발과 단식농성을 벌이는 등 강경 투쟁을 주도했다. 평소에는 대인관계가 부드러운 편이다. 경남도의 폐업 방침이 굳어졌을 무렵 1년 후배인 윤 국장과 경남도청 정원에서 장시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보건의료노조의 이론가인 나영명 정책실장은 국문과를, 이주호 전략단장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진주의료원과 관련된 소송에서도 ‘고려대인’은 빠지지 않았다. 창과 방패 모두 동문이다. 홍 지사는 최근 기자 2명을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냈다. 홍 지사 측 이우승 변호사는 고려대 76학번. 홍 지사보다 후배이지만 사법고시 동기여서 가깝다. 이 변호사는 진주의료원과 관련된 경남도의 다른 소송도 맡고 있다. 기자 쪽 변론을 자청한 박훈, 하귀남 변호사도 고려대를 나왔다. 박 변호사는 영화 ‘부러진 화살’의 피고인 측 변호사의 실제 주인공. 하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 당시 대통령행정관을 지냈고 정치에 뜻을 둔 인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인 두 변호사는 “이번 소송을 ‘공익소송’으로 규정하고 변론을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26일엔 모금운동도 벌인다.
지난달 6일엔 고려대 민주동우회가 이례적으로 진주의료원에서 ‘고대인의 날’ 행사를 열었다. 홍 지사를 포함해 동문이 많이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 이들은 홍 지사에게 폐업 철회를 촉구했다. 경남도의 한 출입기자는 “이번 사태에 동문 간 유대가 끈끈하기로도 소문난 고려대 인맥이 다수 얽혀 있는 것이 우연의 일치 치고는 묘하다”며 “대체로 자기주장과 자부심이 강한 분들이라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은 모양”이라고 해석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