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1966∼)
애인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밤에
아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운다 아내는 속 깊은 보호자답게
모든 걸 안다는 듯 등 두들기며 내 울음을 다 들어주고
세상에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세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따뜻한 위로를 잊지 않는다
나는 더 용기를 내서 울고
아내는 술상을 봐주며 내게 응원의 술잔을 건넨다
이 모처럼 화목한 풍경에 잔뜩 고무된 어린것들조차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와 율동을 아끼지 않고
나는 애인에게 버림받은 것이 다시 서러워
밤늦도록 울음에 겨워 술잔을 높이 드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갖자고
술병을 세우며 굳게 다짐해보는 것이다
결혼한 사람에게 반려자란 어떤 문제건 고민이건 의논할 수 있는 최상의 존재이리. 그런데 불륜이라 불리는 연애나 그 실연에 대해서는 누구한테 털어놓나? 제 가장 내밀한 희락, 혹은 고통과 슬픔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 아내와 나누고 싶은 마음 간절한 남자도 있으리. 하지만 차마, 절대로 입을 열지 못하는데 화자는 대단하구나. 속이 없거나 속이 바다같이 넓은 여인과 부부가 되어 속 편하게 사는 이 남자에게 부러운 마음 가득한 유부남들 계시리. 화자여, 장하구려! 어쩜 아내를 이만한 경지에 올리셨소?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