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史草정국’ 궁지 몰린 민주당
민주, 정상회담 준비자료 단독열람 무산 우윤근(왼쪽 앞), 박민수(우 의원 뒤) 의원 등 민주당 소속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열람위원들이 23일 국회 운영위원장실 앞에서 정상회담 관련 사전 준비, 사후 이행 문건 열람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운영위원장인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 새누리당 열람위원단장인 황진하 의원의 거부로 열람에 실패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23일 침묵을 깨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실 사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정치권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에서 회의록을 삭제했다는 정황이 알려지면서 침묵을 지키기 어렵게 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 부산에서 e메일 발송
부산에 머물고 있는 문 의원은 오후 3시 35분 e메일을 통해 출입기자들에게 개인성명을 배포했다. 내용은 세 가지다. △노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사수 의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NLL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국가정보원 국정조사에 집중해 대선 개입과 대화록 유출 의혹을 낱낱이 밝혀내자는 것이다. 그는 “NLL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강한 톤으로 NLL에 대한 태도를 밝히면서 출구전략을 택했다.
문 의원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회의록 원본 공개를 촉구했고, 원본 공개 결과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 것이 사실이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원본 공개’로 당론을 정했던 것도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 의원을 믿었기 때문이다.
한 의원은 “대선후보까지 지낸 사람이 당 전체를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부산에 머물면서 달랑 e메일을 보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한길 대표 등 지도부와의 사전 조율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회의록 공개를 반대했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트위터에서 “이럴 거면 시작을 안 했어야 했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논란의 핵심인 회의록 증발 사태에 대해 “여야가 합의해 사실관계를 차분히 규명해 나가면 될 것이다. 여러모로 부실한 국가기록관리 시스템과 법적 불비를 더 튼실하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만 한 점도 도마에 올랐다.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부가 회의록을 넘기지 않은 것”이라고 공격하는데도 반박 논거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폐기설’이 확산될 수밖에 없게 됐다는 푸념도 나온다.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 의원이 과연 그 같은 사실을 몰랐겠느냐란 의혹이 더해지면서 문 의원의 입지가 위축되고, 5·4전당대회에서 구주류로 전락한 뒤 부활을 모색해온 친노(친노무현) 세력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 공세 고삐 바짝 조인 새누리당
새누리당은 “뻔뻔함의 극치”라며 공세의 고삐를 더욱 죄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즉각 논평을 내고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역사적 기록인 사초 폐기에 대한 입장과 사과가 우선 있어야 한다. 국가기록물 생산과 이관에 참여한 친노 인사들의 철저한 조사와 책임 추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혀 공세를 예고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누가, 어떻게, 왜 역사를 지우려고 했는지, 대화록이 사라진 경위를 명명백백히 밝히고 전대미문의 사초 실종에 대한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면서 “수사권이 있는 검찰이 밝혀야 한다”고 압박했다.
민동용·장강명·고성호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