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냉전의 서슬이 시퍼렇던 1950년대 초 미국은 극비리에 소련을 염탐할 수 있는 정찰기 개발에 착수했다. 첩보위성이 없던 시절 적국 영토 깊숙한 곳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는 정찰기는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꿀 ‘꿈의 무기’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록히드마틴의 특수항공기 개발팀인 ‘스컹크 워크스(Skunk Works)’가 신형 정찰기 개발에 매달렸다. 그 결과 1955년 당시로선 최고의 항공기술이 집약된 U-2 정찰기가 탄생했다. 미국은 이 정찰기를 기상관측장비로 위장해 소련 영공에 침투시켜 핵미사일 기지와 격납고 등 특급기밀시설을 촬영했다. 얼마 뒤 소련은 U-2기의 존재를 눈치 챘지만 2만 m 이상의 고고도(高高度)를 비행하는 ‘괴물 정찰기’를 추적하거나 요격할 수단이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U-2기의 추락 이후 미국은 1965년 더 강력하고 은밀한 SR-71 블랙버드(Black Bird)라는 초음속 정찰기를 개발했다. 오징어 모양의 SR-71은 사상 최초로 음속의 3배 이상을 돌파한 정찰기였다. U-2기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시속 3600km로 날아가는 ‘검은 괴물새’는 인류가 개발한 가장 빠른 정찰기이자 몇 세대 앞선 첨단항공기술의 결정체였다.
SR-71은 1990년대 초 퇴역 때까지 베트남전에 투입됐고, 일본 오키나와 기지에도 배치돼 북한과 소련 영공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1968년 1월 미국 해군의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나포된 사건을 가장 먼저 확인한 것도 SR-71이었다.
이어 1980년대 초에 개발된 F-117 스텔스 전폭기는 ‘보이지 않는 항공기’ 시대를 열었다.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F-117은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에 실전 투입될 때까지 그 모습과 성능이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에도 출격해 가공할 위력을 보여준 F-117은 대북억지전력으로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배치됐다. 2007년 말 F-117의 마지막 비행을 한 마이클 드리스콜 대위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김정일 정권이 통치하는 북한 상공을 맘껏 휘젓고 다닌 것”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올해 3월 실시된 키리졸브(KR) 한미 연합군사연습엔 F-117의 ‘후예’인 B-2 스텔스 폭격기와 F-22 스텔스 전투기가 참가했다. 이 항공기들은 정밀유도폭탄은 물론이고 핵미사일을 탑재하고 적국에 은밀히 침투할 수 있다. 적 지휘부와 주요 표적을 쥐도 새도 모르게 초토화할 수 있는 두 항공기의 무력시위는 적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북한이 두 항공기의 한반도 배치를 ‘핵도발’이라고 강력 비난한 것도 가공할 위력을 알기 때문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