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다 겪었다… ‘통일’ 화두 들고 다시 내일 향해 잰걸음
23일 국회 의원회관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 사무실엔 한쪽 벽을 채우는 대형 백두산 천지(天池)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 의원 집무실에도 눈 쌓인 천지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는 “한국의 새로운 가치는 통일”이라며 “국민이 통일에 대한 비전과 열정,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땀을 흘리겠다”고 힘줘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은 ‘다시 한 번 대통령 선거에 나설 뜻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걸 먼저 말하고 싶다”며 말을 이어갔다.
“통일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통일은 경제고 문화고 더 나은 우리의 삶이다. 안타깝게도 국민들은 아직 통일비전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은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인식까지 가지고 있다. 한국 사회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바로 통일이다. 국민들이 비전이나 열정,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국민들이 나에게 일을 맡겨 주시지 않겠나.”
이 의원은 어느새 6선 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선수로만 따지면 정몽준 의원(7선)에 이어 당내 서열 2위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친정으로 돌아왔지만 당내에서 그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자리를 약속받고 돌아온 것 아니냐’는 싸늘한 눈초리도 있다. 19대 하반기 국회의장 밀약설도 끊이지 않는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어떤 계약이나 약속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국회의장 자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장은 명예와 권위를 상징하는 자리다. 나는 험난한 정치역정을 겪어 온 사람이다. 험한 일이 나에게 더 어울린다. 열정과 꿈을 가지고 일과 행정을 하는 것이 더 맞는다. 장관 도지사도 그렇게 했고 나름 성과도 냈다고 자부한다. 국회의장은 나보다 흠이 없고 명예로운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
그러면서 자신의 시선은 ‘자리’나 ‘당내 세력’ ‘지역 기반’ 등 일반적인 정치적 문법을 넘어 ‘통일’과 ‘한반도’를 향해 있음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는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당이 필요로 할 때까지 가급적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16년 전 탈당에 따른 ‘최소한의 도리’라고 판단한 듯했다.
그는 “오랫동안 당을 지킨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나는 큰 빚을 진 사람”이라며 “다른 사람보다 두 배, 세 배 희생해서 정치적 부채를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랑 생활’에 대해 묻자 그는 “10년 넘게 바닥에서 지내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또 “온갖 비난 속에 있어봤지만 더 많은 걸 생각하고 공부한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큰 흐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긍정적으로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 의원이 공부에만 파묻혀 사는 것은 아니다. 1997년과 2002년 두 차례나 대권의 문턱까지 갔던 그가 세력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다. 그는 지난달 20일 싱크탱크인 한반도통일연구원을 출범시켰다. 1주일에 한두 차례 당내 초·재선 의원들도 꾸준히 만나고 있다. 물론 주요 화두는 ‘통일’이다. 연구원은 출범 한 달도 안 됐지만 당내 의원들과 전문가들을 초빙해 벌써 두 차례나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통일외교 전문가인 길정우 의원은 “그는 엉뚱한 이데올로그가 아니다. 경기지사, 장관 등을 거치면서 쌓인 현장감과 행정의 경험이 그의 통일론에 녹아 있다”며 “막연히 ‘통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그의 생각은 다른 어떤 통일론보다 설득력과 분명한 비전이 있다”고 평가했다.
“화가는 백지에 물감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이고, 작가는 종이에 단어 하나하나를 결합시켜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드는 예술가다. 정치는 국민이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텅 빈 공간인 미래에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채우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열정이 있고 힘이 남아 있는 다가오는 미래를 향해 땀을 흘려야 한다.”
하지만 당내에선 과연 그에게 기회가 다시 돌아올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그가 넘어서야 할 ‘정치적 업보’는 여전히 태산인 듯하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