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직 청년 울리는 취업사기 기승
올해 2월 군대를 전역한 뒤 취업을 준비해 온 정재용(가명·23) 씨는 12일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컴퓨터 보안업체에 채용됐다는 내용이었다. 보수도 높았고 근무 성적이 좋으면 정규직 채용도 가능하다고 했다. 애타게 취업을 바라던 정 씨에게 ‘단비’ 같은 전화였다. 자신을 채용 담당자라고 소개한 상대방은 “신입사원 교육 전에 회사에서 사원증과 급여통장을 만들어야 하니 이력서와 비밀번호가 적힌 통장을 보내 달라”고 했다. 정 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가 적힌 이력서와 통장을 보냈다.
그러나 이들은 컴퓨터 보안업체가 아닌 보이스피싱 조직이었다. 보이스피싱에 필요한 대포통장을 얻기 위해 한 인터넷 취업 알선 사이트에 정 씨가 올려놓은 이력서를 보고 접근한 것. 이렇게 만든 대포통장으로 이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저금리로 대출해 주겠다. 우선 거래 실적부터 올려야 하니 지금 바로 돈을 입금해 달라”며 사기를 쳤다. 이들 보이스피싱 조직은 기존에는 주로 노숙인 등의 주민번호를 이용해 통장을 개설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개당 30만∼40만 원을 주고 통장을 사는 방법을 이용해 왔으나 최근에는 취업준비생들의 절박한 심정을 악용하는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이 압수한 물품에는 ‘성실한 일꾼이 되겠습니다’ ‘이 회사에서 제 날개를 펼치고 싶습니다’ 등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적은 취업준비생들의 이력서가 즐비했다. 전기기능사 원동기자동차면허 등 자격증란도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강북서 지능팀 김태남 경위는 “최근 적발된 보이스피싱 조직의 대포통장을 조사해 보면 3개 중 1개는 취업준비생을 속여 만든 것”이라며 “이 밖에도 취업을 명목으로 투자금을 요구하거나 신상정보를 이용해 거액을 대출받는 등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한 각종 범죄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으로 30여 명에게 총 3억 원을 뜯어낸 혐의로 중국동포 이모 씨(24) 등 2명을 구속하고 송금을 도와준 한국인 최모 씨(49)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본보 취재팀이 취업 알선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사이트마다 많게는 10만 명 이상 되는 취업준비생의 이력서가 올라와 있었다. 기업회원으로 가입하면 100명의 이력서를 열람할 수 있는데 비용은 고작 1만 원 남짓이었다. 100원 정도의 비용으로 한 사람의 휴대전화번호와 출신지, 학력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에는 유령회사를 만든 뒤 취업 알선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린 취업준비생들에게 접근해 사기 행각을 벌인 이모 씨(25)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 씨는 업무상 은행 통장 사본과 인터넷뱅킹 신청서, 보안카드 등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뒤 이를 이용해 은행 대출을 받아 돈을 가로챘다. 또 올해에도 대학생 1000여 명에게 취업을 명목으로 휴대전화 개통을 하게 한 뒤 판매보조금을 챙겨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근거 없이 높은 임금을 제시하거나, 취업을 위해선 투자부터 해야 한다거나, 출근 전부터 구체적인 신상정보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일단 의심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북서 안선모 수사과장은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통장 등을 제3자에게 제공하면 금융대출사기나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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