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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시장, 작품별 흥행통계는 왜 쉬쉬할까

입력 | 2013-07-25 03:00:00


“뮤지컬 작품별 흥행수입이요? 자료는 있지만 제공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왜죠.”

“뮤지컬산업은 이제 막 성장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곤란합니다.”

지난주 한 뮤지컬 제작기획사 관계자와의 통화. ‘여러 가지 이유’가 궁금했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등 8개 극장과 CJ E&M 등 5개 제작사, 국내 공연티켓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인터넷예매업체 인터파크에 동일한 자료를 요청했다. 최근 5년간 국내에서 공연한 뮤지컬 작품별 누적수입이다. 이 자료가 어렵다면 누적 유료관객 수라도 알고 싶다고 했다.

응답은 한결같이 “어렵다”였다. 지난해 국내 뮤지컬 흥행 랭킹 톱10 순위만을 건넨 인터파크 측은 “매출이나 관객 수는 위탁판매업체가 제공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연장과 제작사가 줄 수 있는 자료는 유료, 무료 구분 없는 총 관객 수뿐이었다. 일부 극장은 “당연히 갖고 있지만 대관 공연이라 영업정보를 내보내려면 기획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그마저 거부했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공연시장 총 매출은 약 4500억 원으로 1년 새 10% 이상 성장했다. 뮤지컬 시장 매출은 그 60%에 이르는 약 2700억 원. 연 성장률은 공연시장 전체 평균의 2배가 넘는 25%였다. 부산 등 지방 공연이 늘고 대형 뮤지컬 흥행으로 고정 팬층에 더해 신규 관객이 유입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관객 1억9489만 명, 극장 매출만 1조4551억 원을 기록한 영화산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 ‘작은 시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매출 2700억 원과 성장률 25%는 인터파크의 자체 추정치다. 인터파크의 온라인티켓판매시장 점유율을 70%로 보고, 현장매표소와 다른 사이트 판매금액을 추산해 ‘대강’ 정리한 금액이다.

반면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특정 영화의 흥행 성적을 실시간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미한 오차는 있지만 수년 전 개봉한 영화의 관객 수와 누적수입 등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다. 시장의 성장세와 관객의 성향 등을 확인하고 변화의 흐름에 대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료다.

공연시장에서 영화처럼 티켓판매통합전산망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양혜영 CJ E&M 공연마케팅팀장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뮤지컬협회 등을 중심으로 시스템 구축 논의가 있었지만 예산 지원 문제 등으로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지만 굳이 만들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에서는 공연매거진업체 ‘플레이빌’이 1994년부터 웹사이트(playbill.com)를 통해 티켓판매 통합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뉴욕 브로드웨이, 영국 런던 등 지역별 박스오피스를 매주 집계하고 관련기사도 게재한다. 2003년 만들어진 브로드웨이월드닷컴(broadwayworld.com)에서도 공연시장 통계자료를 찾을 수 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바로 연결되는 인터파크의 시장 독과점에 익숙해진 기획사들이 티켓판매 수치 자료를 공공연히 비밀처럼 만들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작품이 티켓 판매를 인터파크에만 독점적으로 맡길 경우 사이트 상단 배너광고 노출 등 혜택이 주어진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굳어지면서 인터파크 데이터가 그대로 전체 공연시장 데이터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 공연기획사 신시컴퍼니 최승희 홍보팀장은 “기획사 입장에서는 시장점유율을 고려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현재 공개되는 자료로는 누구도 정확한 공연시장 상황을 알아낼 수 없다”고 말했다.

신정아 설앤컴퍼니 마케팅팀 부장은 “올여름 대형 뮤지컬 화제작이 여러 편 막을 올렸지만 개별 작품 관객 수는 지난해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홍보팀 이정연 씨는 “뮤지컬전용극장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뮤지컬을 무대에 많이 올리지 않는다. 객석점유율도 예상보다 낮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시장의 자금 흐름에 어느 정도의 거품이 어디에 끼어 있는지, 취약점은 무엇인지 찾아낼 방도가 없는 것이다.

정확한 흥행 데이터가 공개되면 공연산업이 치명적인 타격이라도 입게 될까. 양혜영 팀장은 “티켓 가격에 세금이 미리 잡혀 있는 데다 소규모 공연은 세금을 물지 않는다. 투명하게 실체를 드러내는 데 대한 막연한 거부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