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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단체장, 제 돈 쓰듯 선심성 사업에 ‘펑펑’

입력 | 2013-07-25 03:00:00

시중은행들, 지자체에 금고 예치 대가로 3년간 2400억 제공
지방선거 앞두고 임의집행 잇따라… 은행협찬 받아 공무원 해외여행도
감사원, 지자체 159곳 475명 적발




시중은행들이 광역 지방자치단체 금고(金庫)를 맡기 위해 최근 3년간 지자체에 낸 출연금과 기부금이 24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자체들은 “시도민에게서 거둬들인 세금을 넣어두는 데 따른 정당한 대가”라고 밝히지만 이 중 일부는 투명한 회계처리 없이 ‘쌈짓돈’처럼 집행되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수익성이 날로 나빠지는 은행들 역시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기는커녕 지자체 금고를 두고 출혈경쟁을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 시중은행, 3년간 2400억 원 기부

24일 금융감독원이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에게 제출한 ‘광역지자체 금고 선정 및 은행 출연금 현황’에 따르면 2010∼2012년 국내 시중은행 12곳이 금고를 따내기 위해 광역단체에 준 출연·기부금은 2416억100만 원이다. 연간 25조 원 규모의 서울시 금고를 맡고 있는 우리은행이 806억 원의 출연금을 냈고, 14개 광역단체 금고를 담당하는 농협은 출연금과 기부금으로 394억 원을 납부했다.

은행들은 수천억∼수십조 원에 이르는 큰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사례 성격으로 출연·기부금을 지급해 왔다. 안전행정부가 지난해 7월 금고 선정 방식을 수의계약에서 경쟁입찰로 바꾸고, 금고를 최대 4곳까지 지정할 수 있게 하면서 경쟁은 뜨거워지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고 지정에 따른 수익은 미미하지만 공무원, 민원인 고객을 확보할 수 있고 인지도를 높일 수 있어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 일부 출연금, 지자체 ‘쌈짓돈’ 전락

문제는 은행들이 금고 선정의 대가로 낸 출연금 일부를 지자체가 투명하지 않게 쓰고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와 은행이 금고 계약을 맺으면서 약정서에 출연·기부금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임의로 집행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A도는 음악축제 등 기관장의 선심성 사업에 은행 출연금을 썼다가 지적을 받았다. 이 지자체는 지출하기 전 ‘협력사업운영위원회’ 승인을 거쳤지만 위원회가 외부 인사 참여 없이 도 공무원 3명으로만 구성돼 사실상 감시의 눈에서 벗어났다. B광역시는 교량 건설, 농산물유통센터 건립 등에 금고 돈을 썼다. 예산 미반영액은 의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금고 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드러난다. C도에서는 2010년 공무원 8명이 지정금고 은행으로부터 법인카드를 받아 일본으로 골프여행을 갔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심지어 D도의 한 공무원은 금고 은행으로부터 기프트카드를 받은 뒤 상사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밥값, 술값으로 쓰다가 걸려 감사원 징계를 받았다.

2010년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지정금고로부터 돈을 받아 해외여행을 하다가 걸린 지자체는 159곳, 공무원은 475명에 달했다. 안행부, 권익위 등이 관련 규정을 엄격히 고쳐 사정이 다소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최근 인천시교육청 간부 직원이 지정금고인 농협으로부터 접대를 받아 검찰 수사를 받는 등 지자체 금고를 둘러싼 잡음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실정이다.

임주형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 단체장이 선심성으로 돈을 쓰는 사례가 늘 수 있다”며 “중앙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경 의원은 “투명한 회계구조를 담보하려는 지자체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훈·조은아·신수정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