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심리학자 서은국 연세대 교수가 들려주는 ‘행복의 조건’
행복심리학을 연구하는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에게 본인은 행복한지 물었다. “저는 선천적으로 행복유전자를 많이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행복을 공부한 덕분에 제가 가진 행복도를 최대화하는 방법은 잘 알죠. 바로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겁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행복심리학을 전공한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47)는 “먼 옛날부터 인간의 목표였던 생존을 위한 ‘수단’이자 자극제가 바로 행복”이라고 강조한다. 서 교수는 행복심리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에드 디너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교수 밑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요즘 그는 행복을 진화론의 관점에서 쉽게 설명하는 첫 저서를 집필 중이다.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그를 만나 진짜 행복의 정체를 물어봤다.
―행복을 어떻게 진화론으로 풀이하나.
―개인의 행복도는 태어날 때부터 웬만큼 정해져 있다는 게 사실인가.
“유전적으로 남보다 행복감을 더 잘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못 느끼는 사람이 있다. 이는 유전적으로 100%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를 비교한 연구에서도 입증됐다. 어릴 때 각각 다른 나라로 입양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쌍둥이를 성인이 된 뒤 조사해 보니 행복 수준이 똑같았다. 물론 행복이 100% 유전자에 좌우된다는 말은 아니다. 행복도는 키 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키가 어느 정도 클지 정해져 있지만 치즈와 우유를 열심히 먹으면 좀 더 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행복지수 상위권 국가와 하위권 국가의 국민은 행복유전자가 다르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선천적 기질이고, 다음은 문화적 환경이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가치관, 규범이 사회구성원의 행복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처럼 어느 대학에 가고,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느냐 같은 획일적 잣대로 개인을 평가하는 사회에선 행복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덴마크는 이혼율이 83%나 되지만 여러 행복지수 조사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해 왔다. 이혼자를 이해해 주고 간섭이나 험담을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덕분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기본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국가가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의식주가 해결되면 정서적인 데서 행복을 찾는다. 이는 국가가 해결해 주기엔 한계가 있다. 문제는 많은 국가가 여전히 인프라 개선을 통해 국민의 행복을 높이려 한다는 점이다. 북유럽 국가가 행복한 이유를 사회보장제도와 경제력에서 찾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다면 잘사는 일본이 우울한 이유는 어떻게 설명하겠나.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 신흥경제국이 경제력에 비해 행복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강압적이고 수직적인 공동체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매사에 일이 잘 풀리는 사람, 물질적으로 풍족한 사람이 더 행복한가.
“착각 중 하나가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 사람은 행복하고, 매사에 꼬이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보는 것이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생을 비교해 보면 의외로 좋은 일과 나쁜 일의 빈도에는 별 차이가 없다. 인생의 많은 사건이 행복에 영향을 주는 시간은 아주 짧다. 나쁜 사건으로 인해 생긴 부정적 감정은 웬만하면 3개월 안에 사라진다. 인간의 적응력은 대단하고, 행복의 약발은 짧다. 물질로 얻는 기쁨은 일시적이고 그로 인한 만족도는 점점 떨어진다.”
―진정 행복해지는 방법은 뭔가.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