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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중현]김 순경의 비유

입력 | 2013-07-26 03:00:00


박중현 소비자경제부 차장

대기업 경제연구소에 몸담고 있던 경제학자 A 씨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중반에 젊은 공무원 수십 명 앞에서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재벌개혁의 칼바람에 기업들이 바짝 위축돼 있다는 걸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던 A 씨는 강의 제목을 ‘김 순경의 비유’로 잡았다.

강의 내용은 이랬다. 경찰학교를 갓 졸업해 사명감에 불타는 젊은 김 순경은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 배치됐다. 한두 주 마을을 둘러본 김 순경은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 ‘기업하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실천과제로는 ‘범죄 줄이기’를 택했다. 주민들이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하려면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본 것이다.

다음 날부터 그는 마을 한가운데 있는 나이트클럽 앞으로 출근해 문을 닫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마을 사람에 외지 사람들까지 밤마다 이곳에 몰려 흥청거리면서 폭행, 음주운전, 간통 등 이 마을의 모든 범죄가 이곳을 중심으로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범죄 건수는 급격히 줄었다. 이와 함께 클럽을 찾는 손님의 발길도 딱 끊겼다. 클럽 사장은 ‘며칠이나 가겠어’ 하는 생각에 모른 척 꾹 참았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가도 김 순경은 자리를 뜰 기색이 없었다. 다급해진 사장은 김 순경을 쫓아갔다. “대체 왜 이러나. 나한테 감정이라도 있나. 자네 때문에 먹고살기 힘든 거 모르겠나. 따로 바라는 거라도 있는 건가?”

자신의 ‘숭고한 뜻’을 곡해하는 클럽 사장의 말에 김 순경은 발끈해 목청을 높였다. “이게 다 사장님과 마을 사람들을 위한 거라고요. 제가 하는 일이 결국 도움이 될 테니까 두고 보세요.” 머잖아 클럽은 문을 닫았다. 주변 포장마차, 여관 등도 따라서 폐업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겉으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기업을 옥죄는 정책을 추진하던 당시 정부를 A 씨는 김 순경의 비유를 통해 꼬집었던 것이다. 며칠 뒤 해당 기업에 경고가 전달됐다. A 씨는 그 정부 내내 외부에 이름을 걸고 코멘트할 수 없는 ‘언론(言論) 연금’ 상태로 지냈다.

해묵은 이야기를 길게 끄집어낸 건 지금 경제계 분위기가 10년 전과 너무 비슷해서다. 규모가 크건 작건 기업인과 자영업자들은 요즘 “기업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장기적으로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 중소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대기업을 겨냥한 일감 몰아주기 과세 등과 관련해 중견, 중소기업들은 “피해는 오히려 우리가 본다”며 항의하고 있다.

국세청도 올해 세무조사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줄었고 무리한 세무조사를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기업인과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복지 확대에 5년간 필요한 135조 원을 마련하려고 정부가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가 상식처럼 떠돈다. 오죽하면 “국세청이 복지정책의 주무(主務) 부처”란 농담까지 나올까. 경제를 중시하는 우파(右派) 정부에 대한 기업인들의 불만으로는 이미 도를 넘은 느낌이다.

대통령은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고 하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물론 기업인들의 푸념 중에는 근거 없는 억측이나 엄살도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폭증한 불만 수준의 원인은 김 순경처럼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정부일 수 있다.

멀리 보고 경제구조를 제대로 바꾸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결국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벌이는 일들이 지금은 기업과 기업인의 심리를 심하게 위축시키는 형국이다. 때론 국가경제를 위해 정부가 무조건 열심히 일하기보다 어느 부분에서는 아예 손을 놓는 게 나을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박중현 소비자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