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동조사단, 현지서 어떤 역할 했는지 궁금증 남아”
동아일보는 22일 제3기 독자위원회를 새로 구성하고 본사 회의실에서 ‘항공사고 보도의 교훈’을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이진강 위원장, 고희경 위원, 김성태 위원.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샌프란시스코 사고는 한국과 미국 중국이 연관돼 있어 특히 그렇다. 대형사고 보도의 균형 잡힌 시각을 위해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2일 ‘항공사고 보도의 교훈‘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
<참석자>
●위원장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 위원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임규진 편집국 스탠더드에디터
이형삼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김사중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미디어연구소장
―7일 새벽(한국 시간)에 일어난 아시아나항공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사고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사고 및 재난 관련 보도를 두루 점검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번 보도에서 아쉬웠던 점, 빠진 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진강 위원장=항공 사고는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져 늘 언론의 주목을 받습니다. 비행기 사고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원인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론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여러 원인을 가지고 기사를 만들어 냅니다.
김성태 위원=미국 항공당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데이터를 가져다 쓰니까 우리 언론보도가 차별성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자적인 노력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런 부분을 찾아 보도하고 있다는 내용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어느 쪽에 책임이 있느냐를 가리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예단하지 않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 재난보도는 경찰, 관계당국의 소스에 의존하는 ‘패키지 저널리즘’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재난보도에서 피해자의 인권, 독자의 알 권리가 중요하지만 피해자 인권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태안 사설해병대 캠프사고 기사도 책임 추궁 기사는 쏟아져 나오지만 피해자 가족의 인터뷰를 담는 진지한 기사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고희경 위원=재난 보도엔 자극적인 기사가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그런 기사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고의 특징 중 하나는 피해자가 글로벌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사고가 일어난 곳은 미국. 항공사는 한국. 사망자의 국적은 중국이어서 국가 간 알력 양상까지 빚었습니다. 승무원이 영웅적 행동을 했다거나, 항공사의 위기관리시스템에 의해 언론 보도가 영향을 받는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게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였는지 의문점은 여전히 남습니다.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이유는 다시는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다 철저히 분석해 대책을 수립하자는 것입니다. 원인 규명을 놓고 종합적 분석 없이 섣부른 예단을 야기하는 언론 보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일부 언론의 자국 중심의 보도 경향은 물론이고 국적기를 무조건 옹호하려는 우리 사회 일각의 애국주의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누리꾼들도 사고 초기엔 원인 규명을 놓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사고 예방을 위해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가 반성과 함께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임규진 스탠더드에디터=이번 사고의 원인은 굉장히 복합적입니다. 조종사 실수, 관제사 실수, 시설 미비 등 세 가지가 결합된 것입니다. 조종사 한 명이 그 비행기 기종을 운항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해서 초보운전은 아니지 않습니까. 차분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비행기 사고의 원인 분석은 금방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통상 2년이 넘어서 보고서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보도로 독자의 눈길을 끄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본보는 정확한 사고 원인은 블랙박스 등을 해독해야 알 수 있으므로 사고 원인을 예단해서는 안 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성급한 보도 대신 균형 잡힌 시각으로 관련 소식을 다루려는 자세로 임했습니다.
김 위원=균형 있는 보도를 강조했습니다만 독자들이 기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파악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동아일보가 스스로 잘된 보도로 평가했을 때 그것을 독자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기사가 될 수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자평을 기사로 내보냅니다. TV프로그램과 같이 신문기사도 피드백 장치는 필요합니다. 독자 반응을 알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신문사를 위해 쓸 수 있는 정보 소스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이 읽는 기사와 좋은 기사는 다릅니다. 독자의 피드백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1970, 80년대에는 독자들의 격려전화를 통해 반응을 읽을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인터넷에 댓글이 달립니다. 이 같은 댓글로 기사를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독자 패널을 구성해 정기적으로 지면별, 기사별 만족도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방송의 동영상 장면 중 상당수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을 올린 것입니다. 실시간으로 동영상 장면들이 떠도는데 신문이 글로 쓰는 데 한계가 있을 겁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나오는 거대한 자료 중에서 신문사가 볼 때 뉴스 가치가 있는 데이터들을 활용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하루가 지났거나, 방송에서 본 영상을 다시 보는 건 지겨운 일 아닙니까. 동영상과 자료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신문사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재난 보도에서도 이 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고 위원=이제 항공사고는 글로벌 이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할 수 없는, 신문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 영역이 있다고 봅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여러 신문을 읽어봤지만 신문마다 별 차이는 없었습니다. 동아일보가 앞으로 이런 대형사고를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 위원장=여승무원들의 영웅담과 미담을 방송에서 많이 보도했습니다. 신문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꼬리뼈를 다쳐 의자에 앉지도 못하는 여승무원을 유니폼까지 입혀 기자회견에 나오게 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대형 안전사고가 터졌을 때 속보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종합적 분석으로 실체에 다가가는 것이 신동아 같은 시사잡지의 장기인데, 이번 사고는 NTSB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소식을 내놓는 바람에 관련 기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향후 장기적 관점에서 관련자 및 관련 자료 취재를 계속해 NTSB 조사의 의문점 등을 규명하려 합니다. 이번 사고와 관련한 외신 보도에서 한국 및 아시아 문화에 대한 편견이 느껴졌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위원장=역사에 남는 항공사고의 원인 규명 프로세스에 비추어 이번 아시아나항공 사고 원인 규명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분석한다면 관심 갖는 독자가 많을 겁니다.
―이번 사례는 언론과 국익 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위원장=공동조사에 참여한 한국 조사단이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조사단은 뭘 했길래 미 항공당국이 조종사 과실 쪽으로 몰고 가는 발표가 실시간으로 이뤄진 것인가. 언론이 추적해서 정부나 한국 조사단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게끔 해 줘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 국익 아니겠습니까.
고 위원=미국 정부와 항공당국도 매뉴얼을 통해 기술적으로 움직였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취재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독자들이 알고 싶은 정보를 얻기 위해 언론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또 다른 숙제가 던져졌다고 봅니다.
정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명재연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