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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마주보고 웃는다, 실시”… 철책 투입전 신뢰의 파이팅

입력 | 2013-07-27 03:00:00

육군 칠성부대 GOP 경계근무 동행기




강원 화천군에 위치한 육군 칠성부대 GOP(일반전방소초)부대 소속 장병들이 철책 너머의 북한 땅을 바라보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한국군과 북한군 초소 사이의 거리는 1.3km 남짓에 불과하다. 채널A 제공

“소대장님께 받들어총!”

“단결! 할 수 있습니다.”

18일 오후 6시, 굵은 장대비에 안개까지 짙게 낀 날씨임에도 강원 화천군에 위치한 육군 칠성부대 독수리연대 2대대 5중대 5소초 장병들은 여느 때처럼 야간 GOP(일반전방소초) 철책 경계근무에 들어가기에 앞서 군장 검사에 여념이 없었다. 김재욱 소초장(3사 48기·소위)이 병사들의 총과 복장을 일일이 검사하는 사이, 구자훈 중대장(학사 47기·대위)은 혹시 놓친 것은 없는지 꼼꼼히 마지막 점검을 했다. 북한 초소와 불과 1.3km 남짓 떨어진 최전방에서 근무하는 만큼 사소한 부주의는 개인의 생명은 물론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이유다.

30여 분간의 군장 검사는 병사들이 서로 마주 보며 박장대소를 하는 ‘웃음 체조’로 마무리됐다. 매순간 극도의 긴장감에서 생활해야 하는 탓에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지만 그럴수록 서로 배려하고 단합하자는 의미에서 고안된 아이디어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병사들도 이제는 웃음 체조를 즐긴다고 한다. 오후 근무자와의 근무 교대를 위해 전반야(해질 무렵∼자정) 근무자가 실탄을 받고 GOP 철책에 투입되는 사이, 후반야(자정∼해뜰 무렵) 근무자는 저녁 식사와 휴식을 취한 뒤 서둘러 취침 준비에 들어갔다.

GOP에선 일반적으로 24시간을 오전(해뜰 무렵∼정오), 오후(정오∼해질 무렵), 전반야, 후반야 등 4개로 나눈다. 오전 근무자가 전반야 근무를 서기 때문에 1개 소초에서 3개 분대가 돌아가며 근무를 서는 식이다. 각각 근무 시간이 다르다 보니 식사 및 취침 시간이 분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구 중대장은 “오전 근무자가 근무를 서면 후반야 근무자는 잠을 자고 있고 오후 근무자는 교육 훈련을 받으며 근무 투입 준비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오후 9시경 늦은 저녁을 마치고 간단한 행정업무를 마무리한 구 중대장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등 부대 간부들의 주요 임무는 초병들이 경계를 제대로 서고 있는지를 수시로 확인 점검하는 것이다. 초병들의 시야 확보가 용이한 오전 오후보다는 야간 근무, 특히 취약 시간대인 새벽에 주로 순찰을 나간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일어날 시간입니다.”

당직 근무자의 목소리에 구 중대장은 눈을 떴다. 잠깐 눈을 감았다고 느꼈는데 3시간이 흘렀다. 간단히 요기를 한 뒤 군장을 한 채 상황실로 들어갔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당부하고 오전 1시경 통신병과 함께 야간순찰에 나섰다. “조금은 힘들 것”이란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철책이 둘러쳐진 계단을 바라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북한 초소를 바라보고 어림잡아 오른쪽은 45도, 왼쪽은 70도의 경사로 보이는 가파른 계단은 보는 이의 숨을 막히게 했다.

실제 처음 부대에 배치되는 장병들은 경사가 급한 계단을 보고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안 쓰던 근육을 쓰다 보니 근육이 팽창하고 무릎이 아플 수밖에 없다. 다리가 심하게 부어 ‘메뚜기 다리’가 되는 경우도 많다. 또 새벽에 나가 근무를 서고 오전에 자다 보니 생활 패턴이 바뀌어 고생하기도 한다. 홍승민 대대장(육사 51기·중령)은 “병사들이 적응하는 데 최소 한 달은 걸린다”고 말했다.

비교적 완만한(?) 왼쪽부터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초소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초긴장 상태에서 모두 말이 없었다. 구 중대장은 철책에 이상은 없는지, 며칠째 내린 폭우로 훼손된 곳은 없는지를 세세히 살피며 조금씩 속도를 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초병의 외침에 모두 발걸음을 멈췄다. 초병이 제시한 암구호(暗口號)에 제때 답을 하지 못하면 총알이 날아온다. 기회는 단 세 번뿐. 구 중대장의 신원이 확인되자 초병들은 우렁차게 경례를 붙인다. 초소에 들어간 구 중대장은 상황실로 보고를 한 뒤 초병들에게 근무 시 주의사항을 주지시켰다. 구 중대장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GOP”라며 “주의사항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침이 없다”고 말했다.

관 하나를 놔둔 심정으로…

GOP부대원들이 가파른 철책계단을 오르내리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채널A 제공

GOP 철책 경계근무를 서는 부대는 일반적으로 주력 부대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 북한군의 움직임을 감시하면서 특이사항을 조기에 보고해 주력 부대에 알리는 것이 이들의 주요 임무다. 철책을 넘어 북한군의 무력 도발이 발생할 경우 GOP부대는 북한군의 진격을 막아 아군이 반격에 나설 수 있게 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최전방의 첨병인 셈이다.

이들이 근무하는 철책은 3중으로 둘러쳐져 있다. 철책 밖 지뢰밭은 이곳이 남과 북이 맞서는 최전방임을 실감나게 한다. 지난해 10월 북한 병사가 철책을 넘어왔던 일명 ‘노크 귀순’ 사건 이후 철책이 더욱 보강됐다. 철책 상단에 윤형(둥근) 철조망을 보강했고 소초 막사와 소초 지휘소 등에 경계망과 철조망, 감시 장비를 추가 설치했다.

구 중대장은 타 중대가 관할하는 소초 앞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이제는 경사가 70도쯤 되는 것으로 보이는 난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다 이제 정상인가 싶어 하늘을 바라보면 또다시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장병들 사이에선 ‘천국의 계단’이란 애칭이 붙기도 했다.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소초가 아스라이 멀어진다. 발바닥 하나도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계단이 촘촘히 이어지자 덩달아 숨소리도 가빠졌다. 땀이 온몸을 적시고 목이 탈 무렵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에선 6·25전쟁의 마지막 승전으로 기록된 425고지가 보인다. 휴전 협상이 한창인 사이 남북의 군대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점령하기 위해 막판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김일성은 화천발전소만은 결코 한국군에게 넘겨줄 수 없다며 북한군과 중공군을 총동원해 화천발전소 탈환에 나섰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7월 19일 제2군단 사령부를 직접 방문해 절대 사수를 명령했다.

당시 칠성부대는 백병전을 불사하는 결사 항전으로 정전협정이 체결되는 1953년 7월 27일까지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을 격퇴해 화천발전소를 사수했다. 그 덕분에 국군은 38선 북쪽으로 35km까지 확보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을 수 있었다. 425고지 전투의 영웅 고(故) 김한준 대위는 휴전 이후 이승만 대통령에게서 직접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정상에서 내려와 4소초에 잠시 들러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구 중대장은 4소초의 행정업무를 보면서 주의 사항을 당부했다. 오전 4시 반경 다시 순찰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이 트기 시작하자 철책을 사이에 두고 켜져 있던 등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오전 5시 반경 5소초로 내려왔던 구 중대장이 연대장과의 순찰 합류를 위해 다시 GOP 철책 계단을 올라갔다. 오전 근무자가 GOP에 투입된 이후에야 구 중대장의 이날 임무는 끝이 났다.

하지만 그가 곧바로 취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식사를 하고 행정업무를 보고 나면 오전 9시가 넘어서야 눈을 붙일 수 있다. 꿀맛 같은 단잠도 잠시뿐. 오후 1시면 또 어김없이 일어나 새로운 일과를 수행해야 한다. 잠은 부족하고 몸도 피곤하지만 잠시도 임무를 게을리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 GOP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려야 하는 GOP 철책. 수많은 청춘은 지난 60년 동안 이 길을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 어머니, 애인, 친구들…. 구 중대장은 “부대에 관 하나를 놔두고 나왔다는 심정으로 매일 GOP 근무에 들어선다”고 말했다.

“전쟁이 나면 이곳으로 북한군의 화력이 집중됩니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지는 않죠. 하지만 죽음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최전방에서 조국을 수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자부심을 느낍니다.”

화천=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