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레스토랑·라캉 카페슬라보이 지젝 지음/조형준 옮김/1792쪽 각 4만5000원,4만9000원/새물결
무의 문제는 독일 철학자 헤겔과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함께 천착해온 주제다. 헤겔은 ‘무=없다’이지만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 무라는 개념이 빠지면 뭔가가 텅 비게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없다가 단순히 어떤 것의 부재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존재성을 띠는 관념적 역설이 빚어진다.
라캉은 쾌락 너머에 있는 금지된 희열에 대한 충동을 죽음충동이라고 규정하면서 죽음충동이 우리가 사는 현실의 상징질서를 무의 상태로 돌려놓으려는 불가사의한 의지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이때 무는 현실을 구성하는 상징구조의 급진적 소멸을 뜻하는 동시에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젖히는 창조적 공백을 뜻한다. 없음이라는 부정적 뜻이 생산적 창조라는 긍정적 의미로 전환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젝은 이를 통해 있음과 없음, 존재와 무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아니라 무보다 ‘못한’ 그 어떤 것이 모든 존재의 존재론적 근거라고 주장한다. 그가 서문에서 언급하는 비상식적인 천치(idiot·IQ 0∼25)와 자신을 항상 상식과 동일시하기에 실수를 연발하는 얼간이(Moron·IQ 51∼70) 사이에 존재하는 똑똑한 바보로서 ‘또라이’(imbecile·IQ 26∼50)에 주목하는 이유다.
헤겔과 라캉을 접목하는 데는 큰 걸림돌이 존재한다. 둘 사이에 징검다리로 존재하는 하이데거다. 지젝은 그동안 하이데거의 나치 부역이 그 사상의 당연한 귀결점이라고 비판해왔다. 하지만 하이데거를 빼놓고 무를 논할 순 없다. 지젝은 그 해결방안을 하이데거 사상의 좌파적 전향(13장)에서 찾는데. 다소 옹색하게 느껴진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