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곤의 ‘망달당달’(망가지느냐 달라지느냐, 당신에게 달려 있다)]
인류가 지구에 처음 등장한 이후 참으로 오랫동안 지방은 든든한 우군이자 믿음직한 친구였다. 식량 공급이 불안정할 때 복부지방은 비상시 생명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였고, 혹독한 추위에선 두꺼운 피하지방층이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방패 구실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얼굴이 번지르르하다’ ‘배에 기름깨나 끼었다’ ‘기름진 음식’ ‘부잣집 맏며느리 감이다’ 등의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지방은 없어서 못 먹는 선망의 영양소였으며, 살찐 사람은 누구나 닮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뚱뚱하다는 말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상대방에게 표현조차 하기 힘든 부정적 표현이 돼버렸고, 음식 속 기름은 만인의 기피 대상이 됐다. 이런 흐름의 변화는 물론 일정 정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지만, 지방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매도당할 만한 대상이 결코 아니다.
가까이하기엔 나쁜 놈?
하지만 이 기간에 지방 섭취가 현저히 줄었음에도 비만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자 지방 공격론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시 음식물에서 지방을 대체하던 당분과 정제 탄수화물이 오히려 더 심각하게 비만을 조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게다가 지방 중에는 포화지방처럼 나쁜 지방이 있고 과도한 지방 섭취는 건강에 해롭지만, 건강에 좋은 지방도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지방의 재발견이 시작된 것. 여기엔 로버트 앳킨스(Robert Atkins·1930~2003)라는 한 의사의 영향력도 한몫했다. 그는 1972년 고단백질,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법을 표방한 책 ‘다이어트 혁명’을 출간한 후 지속적으로 제한 없는 지방 섭취를 주장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지방은 무조건 나쁜 영양소라는 편견에서 벗어난 상태지만,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상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만큼 평가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상태다.
먼저 지방에 대해 몇 가지 핵심 내용을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어떤 상대든 제대로 된 정보가 바탕이 돼야 진정한 이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방은 단백질, 탄수화물과 더불어 우리 몸의 3대 영양소 중 하나로 생존을 위해서는 부족해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성분이다.
그런데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이 구조상의 차이가 결과적으로 우리 몸의 건강에 큰 차이를 낳는다. 포화지방은 동맥경화증 등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주범이다. 육지에 사는 동물의 지방(동물성지방) 대부분이 여기에 속하고, 식물성 성분으로는 우리나라 라면에 많이 사용하는 팜유 등의 열대성 열매 기름이 있다. 이 때문에 식품 포장에 ‘식물성 기름 사용’이란 표시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몸에 나쁘지 않은 지방이라고 오해해선 안 된다. 반면 불포화지방은 물고기, 견과류, 식물 등에서 추출하는 기름을 말한다.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오메가3 또는 오메가6 등 몸에 좋은 필수지방산을 많이 함유하기 때문에 좋은 지방으로 분류한다.
적정 체지방량 논란 여전
이렇게 좋은 지방도 있다 해서 체지방량이 많은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체지방량이 지나치게 많으면 아무래도 확률적으로 질병 발생률이 높아질 뿐 아니라, 요즘처럼 외양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외견상으로도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어느 정도의 체지방량이 적절한가 하는 것이다. 과체중의 폐해야 널리 알려졌지만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한 지나친 체중 감소 역시 건강에 해롭다. 2006년 외국의 일부 여자 모델이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던 것처럼 지나칠 경우 치명적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지방은 계륵(鷄肋)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지고 잘 활용하기만 하면 오늘날 인기를 끄는 닭갈비 체인점의 맛있는 요리 같은 또 다른 계륵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