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도쿄 특파원
기자는 야스쿠니 신사를 꽤 많이 찾았다. 4월 벚꽃 시즌이 되면 신사 입구는 포장마차 천국이 된다. 도쿄 제1의 벚꽃 명소 지도리가후치(千鳥ヶ淵)는 야스쿠니 신사 입구와 연결되는데 상춘객들이 신사에서 발길을 멈추고 허기를 해결한다.
13∼16일 ‘미타마 마쓰리’ 땐 연인들의 천국으로 바뀐다. 노란색 등(燈)이 야스쿠니 입구에서부터 배전(참배하는 곳)까지 이어져 있다. 저녁이 되면 등의 불빛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10, 20대 젊은 남녀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가득 들어차 축제를 즐기는 이유다.
이 같은 모습만 본다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말이 이해될 법도 하다. 아베 총리는 일본 월간지 주오고론(中央公論·7월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은 야스쿠니가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신사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가 보면 군인이 한 명도 없다는 데 깜짝 놀란다. 야스쿠니에 온 (일본) 참배객들은 절대 군국주의의 회귀를 염원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벚꽃과 포장마차, 축제, 고즈넉한 분위기는 분명 군국주의와 거리가 있다. 하지만 너덧 번 야스쿠니 신사를 찾다 보면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라는 신사의 새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과연 일본은 침략 전쟁을 반성하고 있기는 할까’ 의문이 들 정도다.
야스쿠니 신사 오른쪽 귀퉁이에선 ‘대동아전쟁 70년전(展)’이란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장 입구에 설치된 브라운관에서 ‘서구 열강이 앞다퉈 아시아를 식민 지배할 때 일본이 나서 아시아를 해방시키려 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일본이 1941년 12월 미국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태평양전쟁을 ‘아시아 해방’이란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다.
신사 내 유물 전시관인 유슈칸(遊就館)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치른 각종 전쟁 자료 약 10만 점을 전시했다. 1층 현관에 설치된 증기기관차는 관람객들이 사진 촬영하는 단골 장소. 과거 철도 건설 과정에서 태국인 중국인 등 6만 명, 전쟁포로 1만5000명이 희생됐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태평양전쟁을 설명하며 ‘아시아 민족의 독립이 현실로 된 것은 대동아전쟁에서 일본군의 빛나는 승리 후였다. 일본이 패한 뒤 각국은 독립전쟁 등을 거쳐 민족국가가 되었다’고 돼 있었다. 일본군의 승리가 민족국가 수립을 앞당겼다는 해석을 인도네시아, 필리핀 국민도 이해할지 의문이다.
이런 자료들을 본 일본인들의 소감은 어떨까. 특별전시회에 놓여 있던 방명록을 펼쳐 봤다. 대부분 “목숨을 잃은 선조들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적었다. 선조들이 왜 목숨을 잃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일본은 침략 전쟁을 반성해야 한다”고 적어 놓자 그 밑에는 “이런 사람은 야스쿠니 신사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비판하는 글을 달았다.
한일 간에는 독도, 위안부 등 다양한 문제가 있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미화하는 한 양국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