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은 (1973∼)
옛날 영화를 보다가
옛날 음악을 듣다가
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생각했다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에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너무 멀리 와버렸구나 생각했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몇 세기 전의 사람을 사랑하고
몇 세기 전의 장면을 그리워하며
단 한 번의 여름을 보냈다 보냈을 뿐인데
내게서 일어난 적 없는 일들이
조용히 우거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눈 속에 빛이 가득해서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
‘단 한 번의 여름’이라면 한평생을 사계절로 나눴을 때의 여름, 청춘을 뜻하는 것이겠다. 나무로 치면,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보고, 왕성한 식욕으로 햇빛을 빨아들이고, 폭풍도 뇌우도 제 생장의 기폭제로 삼아 더욱 싱싱해지고, 이윽고 열매를 맺기 시작할 시기. 그런데 화자는 오직 ‘옛날 영화를 보다가/옛날 음악을 듣다가’ 그 시기를 보냈단다.
이제 더이상 자기가 젊지 않다는 깨달음은 꽤 기를 죽인다. 젊음에 대한 안달과 젊음을 헛되이 보냈다는 이런저런 자책과 회한이 유난히 가슴을 찌르는 시기가 있다. 시인이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그 고뇌를 삭일까. 혹은 새길까.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