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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 눈에 웃는 입… 한국 탈엔 신의 형상이 깃들어 있다

입력 | 2013-07-29 03:00:00

이현경 박사, 神-人 융합 구조 지적




한국의 전통 탈은 코끝을 기준으로 상부와 하부가 서로 다른 감정을 표현한 경우가 많다. 이는 해부학적으로는 짓기 불가능한 표정이다. 인간 형상과 유사한 탈과 상상 속 탈이 확연히 구분되는 중국이나 일본 탈과 다른 점이다. 사진은 봉산탈춤에 쓰이는 말뚝이 탈(왼쪽)과 일본의 전통악극 ‘노(能)’에 쓰이는 시카미(도깨비 탈). 이현경 박사 제공

중요무형문화제 제17호 봉산탈춤에 나오는 ‘말뚝이(말 끄는 하인)’ 탈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한 위화감이 든다. 눈가는 분명 화를 내는데, 입은 환하게 웃고 있다. 미국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사람의 얼굴에는 26개의 근육이 있는데 감정에 따라 쓰는 근육이 각기 다르다”고 말했다. 즉, 말뚝이처럼 위는 분노하고 아래는 기쁜 얼굴은 인간이 지을 수 없는 표정이다. 그렇다면 말뚝이 탈은 왜 이렇게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졌을까.

이현경 홍익대 미술학 박사(36)가 최근 국립민속박물관 학술지 ‘민속학 연구’에 게재한 논문 ‘탈의 얼굴에 나타난 비(非)해부학적 구조 고찰’에 따르면 이는 신령한 무(巫)와 세속적 속(俗)이 융합된 한국 탈의 독특한 결과물이다. 한마디로 신과 인간의 영역이 중첩되다 보니,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얼굴이 나온 것이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 탈에도 토속신앙이 짙게 배어 있다. 하지만 중국희곡학회가 정리한 탈을 보면 인간 형상과 유사한 것과 아예 상상 속에 존재하는 탈은 확연히 구분된다. 괴물이나 신령 탈조차도 얼굴 근육 표현은 해부학에 부합한다. 7세기부터 계승된 일본의 전통악극 노(能)의 가면도 주로 원혼(원魂)을 표현했지만 표정은 인간적이다.

이에 비해 한국 탈은 말뚝이처럼 ‘이중 근육’을 쓰는 비해부학적 표정을 지녔다. 송파산대놀이의 ‘왜장녀(덩치 크고 부끄럼 없는 여성)’ 탈은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슬픈데 살짝 올라간 입 꼬리는 미소를 머금었다. 송파산대 ‘옴중(옴이 오른 파계승)’ 탈은 말뚝이처럼 상부는 화가 났고 하부는 신이 났다. 양주별산대의 ‘애사당(왜장녀 딸)’이나 서울 애오개 등지에서 계승된 본산대의 ‘먹중(장삼 입은 승려)’ 탈은 눈은 슬픔을, 입은 놀람을 나타낸다. 이 박사는 “조선 탈놀이는 서민계층에서 성행했던 만큼 정교한 사실성이나 숭고한 종교성에 딱히 구애받지 않았다”며 “인간의 얼굴 속에 신이 깃든 형상을 표현함으로써 무속적 영향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송파산대놀이에 쓰이는 왜장녀(덩치 크고 부끄럼 없는 여성) 탈과 옴중(옴이 오른 파계승) 탈, 양주별산대놀이에 쓰이는 애사당(왜장녀 딸) 탈과 통영오광대놀이에 쓰이는 홍백양반(얼굴 좌우가 붉은색과 흰색인 양반) 탈. 이현경 박사 제공

한국 탈의 비해부학적 특성은 탈에 반영된 계급의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모든 탈놀이에서 빠지지 않는 ‘양반탈’을 보면 하나같이 코가 기형적으로 작다. 민초를 대표하는 말뚝이는 코가 얼굴의 절반을 넘게 차지할 만큼 비대하다. 남성성을 상징하는 코의 크기로 지배계급을 야유한 결과다.

양반탈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양주별산대의 ‘샌님’은 눈코입이 온통 삐뚤어졌고, 통영오광대의 ‘손님양반’은 표범 무늬처럼 점으로 뒤덮였다. 통영오광대 ‘홍백양반’은 아예 피부가 반으로 갈라져 희고 빨갛다. 이 박사는 “홍백양반은 양반의 이중성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사례”라며 “이런 자유분방한 표현력은 들끓는 에너지가 가득한 디오니소스적 집단의식이 해부학적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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